[공포괴담] 껌1 (미완주의, 스압주의)
IP :  .139 l Date : 18-08-18 18:46 l Hit : 2529
1.



최근 매운 음식에 맛을 들였다.



모처럼 강원도에 출장 갈 일이 생겨, 어제 밤에 맛집을 한번 검색해 보았다.



검색어는 ‘강원도의 매운 요리’.







[매운연탄갈비, 화진매운순대국, 천곡매운순대국, 정말매운집]







몇 가지가 검색되었다.



그중 눈에 띄었던 것이 춘천시 후평동 소재의 ‘정말 매운 집’이라는 곳이었다.



심상치 않은 가게 이름이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서인지 출장지에서 일하는 내내 그 음식이 떠올라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건 다 참아도, 음식에 대한 호기심만은 정말 참을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남들은 ‘타고난 미식가’라며 혀를 차곤 했다.



오전 업무를 조금 서둘러서 마무리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움직였다.



좋은 요리는 함께 즐겨야 제맛이기 때문에,



매운 음식은 질색이라고 정색하는 오 주임을 억지로 끌고 갔다.



생각보다 멀고 외진 곳이어서 억지로 끌려가는 오 주임의 표정에 불만이 가득했다.







“아. 거, 얼굴 좀 펴! 내가 사면 될 거 아냐.”







내가 산다는 말에 오 주임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대리님, 가게는 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 여기는 사람이 다니는 길도 아닌 것 같은데. 정말 유명한 집 맞아요?”







“원래 정말 맛있는 집은 이렇게 외진 데 있는 거야.”







반은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돌아다녀 본 결과로 보면 말이다.







“어 저기 있다. 저거 맞죠? ‘정말 매운 집’. 그렇죠?”







외진 곳에서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낡은 기와집 두 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는 구멍가게였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정말 매운 집’이었다.



볼품없이 허름한 외관이었지만 오히려 이 모습이 나는 만족스러웠다.



물론 오 주임의 표정은 보기 좋게 찌그러졌지만 말이다.







“아! 대리님! 이런 데서 어떻게 밥을 먹어요. 외려 돈을 준다 해도 안 먹겠다!”







“야, 뭐 어때서 그래. 갖출 건 다 갖췄잖아, 옆에 매점도 있고.”







-꼬르르륵







그때 오 주임의 배에서 밥 달라는 소리가 울린다.



민망했는지 오 주임의 얼굴이 약간 붉어진 듯한 느낌이다.







“아, 알았어요. 일단 어서 들어가죠. 배고파 죽겠다고요.”







-드르르륵







미닫이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자,



외관보다 더 볼품없는 내관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 갈라져 검은 때가 잔뜩 낀 나무 테이블이 네 개 정도 있었고,



통나무를 아무렇게나 잘라 만든 의자가 테이블마다 세 개씩 비치되어 있었다.



벽에는 시커먼 낙서들로 가득했고,



전등이 불규칙하게 깜빡이며 어둠과 가까스로 싸우고 있었다.



나와 오 주임은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건 그렇고 손님이 왔는데 주인은 인사도 없고, 얼굴도 안 비친다.



얼마나 음식에 자신 있는지는 몰라도 응대 면에서는 빵점이었다.







“저기요~ 주문 좀 할게요.”







소리를 내자,



주방 쪽에서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아줌마 한 분이 느릿느릿 걸어 나온다.



표정은 심드렁했고, 전체적으로 펑퍼짐한 모습이었다.







“두 개 주면 되나?”







주인이 말했다.



그것도 반말로.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그래도 얼굴에 미소를 잃지는 않았다.







“아, 저기 인터넷 보고 왔어요. 여기가 그렇게 맵다면서요?”







“두 개 주면 되나?”







당황스러웠다.



아까부터 다짜고짜 두 개를 주겠다는 말만 한다.







“예? 메, 메뉴... 없나요?”







“여긴 메뉴가 한 가지뿐인데.”







말을 하며 주인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아무렇게나 벽에 붙어있는 누르튀튀한 종이가 눈에 들어온다.



조악한 글씨로 ‘연탄 갈비’라고 적혀 있었다.



그 외에는 메뉴가 적혀 있지 않았다.







“아, 예 연탄 갈비만 하는군요. 저걸로 주세요. 소문처럼 매운 맛 기대할게요.”







내 말이 끝나자,



주인이 대답 없이 고개만 한 번 끄덕이더니 다시 주방으로 들어간다.







“아 진짜. 맛집이고 뭐고, 여기는 손님 맞을 자세가 안 돼 있네요.”







말없이 앉아 있던 오 주임이 불쾌한 듯 말을 꺼냈다.



나 역시도 불쾌했지만 요리만 맛있다면 문제 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오 주임, 네가 뭘 몰라서 그래. 서비스 좋은 곳치고 참맛을 아는 데가 별로 없어. 이런 데서 먹어야 입이 고급화가 되는 거라고.”







지지난주에는 김해에서 불닭을 먹었고,



지난주에는 제주도까지 가서 갈치조림을 먹고 왔다.



이 정도면 음식에 대해 남에게 왈가왈부할 수준은 된다고 생각했다.







“아, 알았어요. 대리님이 사 주시는 거니까 참고 먹죠 뭐.”







10분쯤 기다리자 요리가 나왔다.



특이한 건,



주방에서 고기를 미리 굽고, 자르기까지 해서 나왔다는 점이었다.



주인이 고기가 든 접시를 테이블 가운데에 놓고는 익숙한 솜씨로 밑반찬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래 봐야 콩나물, 김치, 절인 양파가 끝이었지만.



마지막으로 놋쇠그릇에 담긴 공깃밥 두 개를 테이블에 놓고 주인은 주방으로 돌아갔다.







“아, 잘 먹으란 말도 안 하네. 정말 뭐야 저 사람.”







오 주임은 주인의 태도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뭐, 일단 음식부터 먹어 보자고. 맛있으면 다 용서가 되는 거야.”







두툼하게 토막난 고기에서 연탄 특유의 향이 허연 김과 함께 올라온다.



향을 빼고는 일반 고기와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색깔도 평소에 구워 먹던 고기처럼 검었고.



그렇게 내가 음식을 관찰하는 사이,



오 주임이 먼저 젓가락을 들이댔다.







“일단 먹고 보자더니, 뭘 그렇게 생각하세요. 저 먼저 먹습니다.”







큼직한 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어 한입에 넣는 오 주임.



배가 많이 고팠는지 난폭하게 턱을 움직이며 씹기 시작했다.







“음, 음, 이런 건 쌈에다 싸서...”







오 주임이 말을 하다 멈춘다.



그리고 점점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아, 아, 아, 아아아악!! 매워! 매워!!!”







오 주임이 소리를 지르며 씹고 있던 고기를 식탁에 뱉는다.



그리고 황급히 물을 들이키기 시작한다.



내 물까지 마시고도 성에 안 찼는지,



혀를 내밀고 손으로 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두 눈에는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아니, 그렇게 오두방정 떨 정도야? 내 살다 살다. 하하하.”







애당초 매운 음식을 싫어한다고는 했지만,



다 큰 어른이 돼 가지고 어린애가 청양고추라도 씹은 것마냥 오버를 하는 게 우스웠다.







“하아, 하아, 대, 대뤼뉨이 머거 보쉐요.”







오 주임이 내 말에 기분이 조금 상했는지, 혀를 내민 채 억지로 대꾸했다.



나는 오 주임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고기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었다.



오른 쪽 어금니로 조심스럽게 두어 번을 씹자,



연탄 특유의 향과, 고기의 육즙이 어우러져 입안 가득히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내심 ‘별것도 아니네’ 라는 생각을 하며 씹는 속도를 조금 높였다.



한 일곱 번쯤 씹었을 때일까.



어금니가 약간 얼얼해진 느낌이 나더니 갑자기 혀끝에 강렬한 통각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더 이상 고기를 씹을 수 없을 만큼 순식간에 입안 전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으악!!!”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정말 엄청나게 매운 맛이었다.



지난주에 먹은 갈치조림보다,



지지난주에 먹었던 불닭보다 몇 배는 더 매웠다.



나는 “쓰읍” 하고 입 안에 바람을 한 번 집어넣은 다음, 씹다 만 고기를 다시 씹기 시작했다.



씹을수록 매운맛은 더욱 강해졌고 어느새 내 이마는 땀으로 흥건했다.







“꿀꺽, 으으윽...”






간신히 삼키는 데 성공했는데,



왠지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거 봐요. 맵죠? 이거 어떡할 거예요. 이렇게 많이 남았는데.”







오 주임이 아까보단 조금 나아진 얼굴로 내게 말했다.







“뭐가? 난 오 주임처럼 뱉지도 않았는데. 마, 맛있기만 하구만 뭘.”







허세를 부렸지만 사실 한 조각을 삼킨 것만으로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래요? 그러면 남기지 말고 다 드셔야 돼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오 주임이 장난 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래 내가 다 먹을 거다. 커리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쯧.”







그리고는 다음 고기를 향해 젓가락을 움직였다.



물론 이를 악물고 말이다.







......







......







“아주머니 여기 얼마예요?”







계산을 위해 주인을 불렀다.



결국 고기는 반도 못 먹었지만 오 주임은 그것만으로도 놀랍다는 눈치였다.







“만오천 원.”







여전히 주인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이봐요, 아줌마. 무슨 장사를 그렇게 해요. 너무 불친절한 거 아니에요?”







오 주임이 아까부터 주인의 태도에 불만을 갖더니, 드디어 폭발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주인은 오른손만 내민 채 말없이 서 있을 뿐이었다.







“아, 예. 여기 있습니다. 정말 맵네요.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주인이 내민 손에 돈을 올리며 내가 말했다.



그러자 돈을 받은 주인이 아무렇게나 주머니에 돈을 구겨 넣었다.



그리고 식탁을 치우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주인에게 오 주임이 말을 걸었다.







“아줌마. 여기 뭐, 껌 같은 거 없어요? 이렇게 매운 걸 팔면서 입가심거리라도 있어야지.”







거슬리는 말투였지만 맞는 말이었다.



아직도 입안이 매워서 미칠 것만 같았는데,



달짝지근한 껌이라도 하나 씹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 그래요 아주머니 혹시 껌 있나요?”







내가 말했다.



그릇을 한쪽으로 치우고, 막 걸레로 식탁을 닦던 주인이 불현듯 움직임을 멈춘다.



그리고 우리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껌?”







주인이 짧은 한 글자를 내뱉고는 표정 없이 우리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요 껌. 없죠? 있을 리가 있나. 에휴.”







오 주임이 말했다.



그리고 더 이상 상대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눈짓을 보냈다.



밖으로 나가자는 신호였다.



막 몸을 돌리려는 순간,







“있어.”







주인이 말했다.



막 몸을 돌리던 차여서 우리는 어정쩡한 자세가 되고 말았다.







“아, 그래요? 있으면 하나만 주시겠어요?”







내가 말했다.







“그러지.”







주인이 대답을 하더니 갑자기 왼팔 소매를 걷기 시작했다.



팔꿈치까지 올려서 소매를 고정시켰다.







“갑자기 소매는 왜...... 엇?”







오 주임이 말을 하다 순간 입을 다물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주인의 팔 여기저기에 살점이 뜯겨 나간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살점이 뜯겨 나간 곳에 하얀 뼈까지 보였다.



불쾌한 표정을 짓는 우리에게 주인이 우리 쪽으로 팔을 올렸다.







“자, 껌이야. 떼서 씹어.”







자신의 팔을 씹으라는 주인.



입가에는 엷은 미소까지 비친다.



우리는 잠시 벙찐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러다가 오 주임이 몹시 흥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장난해 지금? 이 가게 신고할 줄 알아! 대리님 나가요. 언능!”







오 주임이 씩씩거리며 문을 나섰다.







“정말 불쾌하네요. 다시는 오지 않겠습니다.”







물론 나 또한 기분 나쁘긴 마찬가지여서 적잖이 인상을 써 주고 밖으로 나왔다.



문 밖에는 오 주임이 우두커니 서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기분 풀어, 오 주임. 그나저나 정말 매웠어. 캬~”







오 주임의 어께를 두어 번 두드리며 내가 말했다.







“저는 고기 한 점 먹었습니다. 그것도 먹다 뱉었죠. 이게 뭐예요 정말!”







오 주임이 사납게 쳐다보며 말했다.







“아, 알았어! 밥 한 번 더 사면 될 거 아냐. 남자가 이런 체험도 해 보고 해야지. 허허, 안 그래?”







“하아. 저기서 껌이나 한 통 사 주셔요.”







오 주임이 체념한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는 음식점 바로 옆에 있는 허름한 구멍가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기요~. 저... 콜록, 콜록.”







문을 열자마자 먼지가 먼저 우리를 반겼다.



음식점만큼이나 청결하지 못한 내부였다.







“어엉? 손님? 워메 이게 얼마만이나?”







백발이 무성한, 7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주인이 우릴 맞이했다.







“손님들 뭐 사실 거드래요?”







음식점 주인보다는 손님 맞는 자세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저기, 껌은 어디 있나요? 지금 너무 매운 음식을 먹어서 많이 단 껌이면 좋겠는데.”







내가 말했다.



그러자 주인이 자신의 뒤쪽에 있는 선반 윗부분을 뒤적뒤적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디 보자. 푸라보노, 하이트이, 티스마일, 음... 단 껌은 없는데.”







무설탕 껌 위주로 비치를 한 모양이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거라도 달라고 말하려는 참에,



오 주임이 먼저 말을 꺼냈다.







“할아버지, 그 앞에 하얀 통은 뭐예요. 그 안에, 껌 같은데. 그거 껌 아니에요?”







오 주임의 눈길을 따라가 보니 과연 하얀 통이 보였다.



둥그런 타원형의 통이었는데 뚜껑이 열려 있어서 내용물까지 보였다.



약간 볼록한 정사각형, 흔히 씹는 껌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자세히 보려고 다가가려는데 그 앞을 주인이 막고 섰다.







“이건 안 돼. 껌이지만 껌이 아니네. 이건 안 돼.”







“아~ 그거 한 번만 보게 해 주시면 안 돼요? 그러니까 괜히 궁금하잖아요.”







괜히 호기심이 발동한 내가 말했다.



하지만 주인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쳇, 뭐야 파는 게 아니면 어디 숨겨 놓던가. 음식점 주인은 자기 팔이 껌이라지 않나. 참 이상한 동네네 여기.”







오 주임이 툴툴거렸다.



순간 주인의 눈이 부릅뜨이는 것이 보였다.







“이보서! 아까 전에 무얼 봤나?”







호령에 가까운 주인의 소리에 오 주임이 화들짝 놀란다.







“에, 예? 무, 무슨...?”







“봤나? 옆집 주인 팔 봤나?”







오 주임은 그제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아. 봤어요. 혹시 껌 있냐고 물어봤더니, 자기 팔이 껌이라고 떼 먹으라고 하더라고요. 나 참.”







그 말을 들은 주인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는다.







“할아버지. 그냥 푸라보노 한 통 주세요. 오백 원이죠?”







내가 말했다.



왠지 요상한 분위기가 생기는 것 같아 어서 나가고 싶었다.







“아니다. 그냥 이 껌 줄게. 이 껌이 무지 단 껌은 맞다.”







주인이 말하며 흰 통에서 껌을 한 움큼 움켜쥐고는 우리에게 내밀었다.



나와 오 주임은 얼떨결에 그 껌을 손에 받았다.







“괜히 이러시니까 오히려 씹기 싫어지잖아요. 그냥 푸라보노 주세요.”







선뜻 내키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했지만 주인이 내 말을 무시한다.







“그 껌, 절대 삼키지 말고 단물 빠지면 뱉어. 이것만 명심하면 된다.”





“아니 그냥 푸라보노...”







“아, 이거 진짜 단데요. 대리님? 매운맛이 싹 가시네. 와, 이 껌 뭐야.”







내 말을 끊고 오 주임이 말했다.



이미 껌 하나를 입에 넣은 모양이었다.







“오 주임! 지금 할아버지가 이상한 말 하는 거 못 들었어?”







“대리님도 그냥 그거 씹으세요. 푸라보노보다 백 배는 낫겠다.”







나는 한숨을 쉬며 다시 주인을 바라보았다.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껌 씹기를 권하는 표정이었다.



내키진 않았지만 어차피 공짜로 받은 껌이니만큼 나도 하나를 입에 넣었다.







-아그작.







껌을 깨무는 것과 동시에 입안 가득 단맛이 퍼진다.



포도 향 같기도 하고, 사과 향 같기도 한 청량한 맛이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입안 가득 단맛이 가득 찼고, 어느새 입안을 지배하던 매운 느낌도 싹 사라졌다.







“명심해야 돼. 절대 삼키면 안 된다.”







정신없이 껌을 씹는 우리에게 주인이 재차 경고의 말을 해 왔다.



뭐 충분히 알아들었고, 껌을 삼키는 취미도 없었다.







“예 알겠어요. 저희 그럼 가 볼게요. 껌, 감사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가게를 나왔다.



조금 수상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정말 기똥차게 단 껌인 것은 분명했다.



달다. 달다. 달다.



씹을수록 단맛이 빠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점점 단맛이 강해진다.



껌이 아니라 사탕을 먹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사탕과는 달리 그 부피가 줄어들지 않는다.



실로 놀라운 껌이었다.



일터로 돌아가는 동안 우리는,



이 신기한 껌을 음미하느라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저 언젠간 단물이 빠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각자의 턱만 바쁘게 움직였다.



대체 무엇으로 이런 껌을 만들어 냈단 말인가?



나는 속으로 연신 감탄만을 내뱉을 뿐이었다.



우리가 그나마 대화다운 대화를 시작한 것은 일터에 도착해서부터였다.







“아, 아. 와. 이거 정말. 미치겠네요, 이 껌. 대박이네.”







오 주임이 말했다.



황홀감에 빠져 있는 목소리였다.







“질겅, 질겅, 응. 이건 진짜. 질겅, 질겅, 와, 말을 못 하겠네. 질겅, 질겅.”







정말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내 턱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내 몸 자체가 이미 껌에 푹 빠져 있는 모양이었다.



마치 마약과도 같은 단물이 씹는 족족 흘러나온다.



미식가라고 자부하던 내가, 구멍가게에서 우연찮게 얻은 조그만 껌 따위에 매료될 줄이야.



괜한 위화감 때문에 이 껌을 끝내 거절했다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리님, 음, 음, 몇 개에요? 저는 열두 개인데.”







아까 받은 껌의 개수를 묻는 모양이었다.



쥐고 있던 손을 펴 껌의 개수를 헤아린다.







“음, 열두 개. 나도 열두 개네.”







내 말과 동시에 오 주임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또 다시 서로가 침묵을 지켰다.



단지 일정한 리듬의 껌 씹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영원할 것만 같은 단맛에 취하며 우리는 각자의 업무를 시작했다.







......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찌나 껌을 씹었는지 턱이 아파 올 정도였다.



잠시 기지개를 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장실이라도 갔는지 오 주임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불현듯 껌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퉤.”







손바닥에 껌을 뱉었다.



그런데 뱉자마자, 껌을 달라고 아우성치듯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조금 있으니 현기증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런 상태가 점점 몸 전체에 퍼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오한에, 발열 증상까지 오는 것 같았다.



결국 살펴보는 것을 포기하고, 황급히 뱉었던 껌을 다시 입에 넣었다.



이쯤 되자 무서운 기분마저 들었다.



혹시 마약이라도 들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세 사람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중에는 오 주임도 있었다.



내가 느낀 불안감을 오 주임에게도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아 오 주임, 이 껌...”







하지만 끝까지 말을 잇지는 못했다.



오 주임과 함께 들어온 두 명도 뭔가 씹고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오 주임, 너 설마... 껌 줬어?”







내 말에 오 주임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줬어요. 아까 전에 오 부장님이랑, 박 대리님한테도 줬답니다. 다들 난리가 났어요. 하하.”







오 주임과 함께 들어온 두 명은, 오 주임의 입사 동기인 양 주임과 이 주임이었다.



셋이서 자주 뭉쳐 다니는 편이었다.







“와, 이거 진짜 끝내 줘요. 어떻게 이런 껌이 있을 수 있죠?”







방금 내게 말을 꺼낸 사람은 양 주임이었다.



덩치가 아주 컸고, 파마머리를 하고 있다.







“오 주임. 이 껌 혹시 뱉어 봤어?”







내가 물었다.



나와 같은 증상을 겪었다면 그렇게까지 낙천적일 수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아뇨. 아직 뱉은 적은 없었어요.

 아, 삼킨 적은 있어요. 곧바로 새 껌을 입에 넣었지만.”







오 주임이 말했다.



순간,



그 구멍가게에서 주인이 한 말이 떠오른다.







-명심해야 돼. 절대 삼키면 안 된다.







“오 주임! 아까 그 주인이 삼키지 말라고 했던 거 기억 안 나?”







오 주임이 멀뚱히 나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짧은 탄식을 내뱉는다.







“아~ 맞다. 그랬었죠, 하하. 뭐 그런데 별일 있겠어요? 그래 봐야 껌인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왠지 심각하게 생각한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거는 있어요. 씹다 보면 진짜 미친 듯이 삼켜 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는 거 말이에요.



 식도를 넘어갈 때는 어떤 느낌일지, 위 안에서도 계속 단맛이 생겨날지, 괜히 막 느껴 보고 싶더라고요.”







마치 신앙 간증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확실히 오 주임은 이 껌에 깊이 빠진 것 같았다.



물론 나 역시도 삼키고 싶은 욕망은 있었다.



그때 나를 막아준 것은 다름 아닌 미식가로서의 자존심이었다.



그러니까 음식의 요구 사항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내 안에 있기 때문이었다.



라면은 절대 생으로 먹지 않고, 게 요리의 껍질은 반드시 벗겨서 먹어야 한다.



그런 것처럼 껌은 씹어서 단물을 즐기는 음식일 뿐,



절대 삼켜서는 안 된다는 게 내 법칙이었다.







“그럼 몇 개나 남은 거야?”







오 주임에게 물었다.



여기저기 뿌리고 다녔으니 이제 많이 줄어들었겠지.







“여섯 개 남았어요. 이건 다른 사람 안 주고 저만 먹으려고요. 히히.”







“어? 그런 게 어디 있어. 적어도 우리한테는 하나씩 더 줘야지!”







이 주임이 말했다.



비교적 덩치가 작고, 피부가 검은 친구였다.







“하는 거 봐서 줄게. 크큭.”







“알았어. 잘 할 테니까 하나만 줘. 나 방금 삼켰단 말이야!”







양 주임이 애원하듯 말한다.



그러자 오 주임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껌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아아아, 고마워 으읍, 질겅, 질겅, 질겅.”







껌을 받자마자 양 주임이 게걸스럽게 씹기 시작한다.



산만한 덩치가 껌 하나에 집착하니 꽤나 우스꽝스러웠다.



여전히 마음속의 찝찝함을 지울 수 없었지만 별일 없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껌을 삼킬 마음은 없었지만 말이다.







......







......







퇴근 시간.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시계를 확인했다.







“아, 오 주임. 먼저 올라갈 테니까, 이 부장님 말 잘 듣고, 마무리 잘 해. 다음 주에 보자고.”







당일치기 출장이었기 때문에 저녁 기차를 타고 바로 서울로 가야 했다.



같이 내려온 사람들 중 나만 그런 거였다.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 3일이나 더 있다가 올라온다.



이것은 순전히 가위바위보에서 내가 진 까닭이었다.







“헤헤헤, 대리님 피곤하시겠어요. 내일 오전에 바로 출근하셔야 할 텐데.”







오 주임이 웃으며 얘기한다.







“얄밉기는, 하여튼 난 간다.”







대충 정리를 마치고 문을 나서려는 순간,







“아, 대리님 잠깐만요.”







오 주임이 나를 부른다.







“저, 껌 하나만 주고 가시면 안 돼요? 어느새 바닥이 나 버려서...”







“응? 그 많은 걸 벌써 다 씹었다고?”







“아 뭐, 제가 네 개쯤 삼키고... 사람들 나눠주고 하니까 벌써 바닥나 버렸어요.



지금 입안에 있는 게 마지막이에요.”







나는 처음 씹었던 껌을 여태 씹고 있었는데 오 주임은 벌써 껌이 바닥난 모양이었다.



역시 미식가와 일반인의 차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가볍게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주머니에서 껌 한 개를 꺼냈다.







“혹시 말이야. 껌이 다 떨어진다고 새벽에 전화하거나 하지는 마. 나 오늘 엄청 피곤할 것 같으니까.”







말을 마치고 오 주임에게 껌을 휙 던졌다.



오 주임이 활짝 웃으며 그 껌을 받는다.







“예, 그럼요. 절대 그럴 일 없을 거예요. 히히. 대리님 수고하셨슴다!”







껌 한 개에 저렇게 천진난만한 모습이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빨리 도착해도 밤 10시는 훌쩍 넘길 것 같았다.



막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 주임과 양 주임에게 작별인사를 한 다음 밖으로 나왔다.



쌀쌀한 가을 공기가 물씬 느껴진다.



그리고 껌을 씹는 턱은 더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







......







“여보세요? 어 나야.

 

 그래 지금 차 기다리고 있어. 은비는? 숙제는 다 했대?

 

 그래, 어 바꿔 줘.

 

 음... 어, 은비니? 그래 아빠야. 숙제는 다 했니?

 

 그래. 착하다 우리 딸.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치킨?

 

 밤중에 기름진 거 먹으면 별로 안 좋은데.

 

 아, 그래, 그래 알았다. 아빠가 치킨 사 갈게,

 

 대신에 아빠 조금 늦게 들어가도 엄마랑 같이 기다리고 있어야 해.

 

 그래 그래, 우리 딸 아빠가 최고로 사랑한다.



아, 은비야 지금 기차 왔다. 아빠 끊을게. 이따가 봐요~”







......







......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내다보는 창밖의 야경이 아름답다.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몸이 축 처지는 느낌이 든다.



아마 곧 잠이 들겠지.



서서히 눈꺼풀이 감겨 온다.



그 순간,



불현듯 오늘 오후의 일이 머리속에 떠오른다.







‘그 아줌마는 왜 자기 팔을 껌이라고 한 걸까?’







‘그 할아버지는 왜 껌을 삼키지 말라고 한 걸까?’





......







'BBQ를 사 갈까, 교촌을 사 갈까.'







하지만 이내 내 마음은 딸에게 사 줄 치킨을 생각하고 있었다.







2.



10시 10분.



예상대로 10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눈이 빠져라 나를,



아니 치킨을 기다리고 있을 딸을 위해서라도 서둘러 집에 가야 할 것 같았다.







“택시, 택시!”



역 앞에 늘어서 있는 택시 중에 하나를 붙잡았다.







“문래동이요.”







문을 열고 조수석에 앉았다.



기사는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부쩍 추워졌어요. 그렇죠? 문래동 어디로 모실까요?”







“그러게요. 밤 되니까 더 춥네요. 문래역 1번 출구 쪽으로 가 주세요.”







내 말이 끝나고, 택시가 움직였다.



서울역 앞이라 비교적 차량이 많은 편이었다.







“저 아저씨, 신촌 로타리 말고, 후암동 쪽으로 가 주세요. 급해서 그런데 조금 빨리 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죠. 어디 출장이라도 다녀오시나 봐요?”







“예, 당일치기로 강원도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정말 피곤하네요.”







택시가 남대문 경찰서를 끼고, 후암3거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예상대로 차량이 거의 없는 한산한 도로였다.







“그래도 어떻게 저녁은 드셨나 보네요. 껌을 씹고 계신 걸 보니.”







그러고 보니 저녁을 먹지 않았다.



점심 먹고 씹은 껌을 여태 씹고 있었으니 말이다.



갑자기 출출함이 느껴진다.



집에 가면 무슨 요리를 먹을지 생각해 봐야겠다.







“무슨 껌 씹으세요? 향이 참 좋네. 방금 씹으신 것 같은데, 저도 하나만 주시죠. 허허.”







기사가 넉살 좋게 웃는다.



하지만 선뜻 건넬 수 있는 껌이 아니었다.







“음... 이 껌은 웬만하면 권해 드리기 힘드네요. 마치 마약 같은 껌이라.”







“아, 그런 껌 좋아합니다. 운전장이에게는 껌이 참 중요한데, 그런 껌들이 졸음 운전도 방지하고 좋죠.”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계속 씹게 만드는 이 껌의 중독성이 운전수와 잘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까 전에 껌을 뱉었을 때 느꼈던 그 이상 증세,



그리고 찝찝한 가게 주인의 경고, 등을 생각했을 때 이 껌을 주기는 힘들었다.







“허허허. 드리고 싶어도 제 입에 있는 게 마지막 껌입니다. 강원도에서만 파는 것이니, 어디 구하기도 힘들 거고요.”







내 말을 들은 기사가 살짝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한다.



차는 어느새 영등포 로타리를 타기 시작했고 문래역까지는 10분도 채 안 걸릴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끼이익.







차가 급정거를 했다.



몸이 크게 휘청거린다.







“저 새끼가 신호도 못 보나! 야 이 개새끼야!!”







안전벨트가 아니었으면 다칠 수도 있을 상황이었다.



목이 약간 뻐근했지만 별 이상은 없는 것 같았다.







“아, 괜찮으신가요? 요즘 하여튼 자전거 때문에 미치겠다니까요.”







“아, 예 괜찮습니다. 늦은 밤에 자전거는 조금 위험하죠.”







기사가 다시 엑셀을 밟아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말없이 창밖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물론 딸에게 사 줄 치킨에 관한 생각이었다.



역에서 가까운 교촌치킨 쪽으로 많이 기울긴 했지만 말이다.







-아그작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운전석에서 난 소리였다.



난 기사를 쳐다보았다.







“질겅, 질겅.”







무언가를 씹고 있었다.



그리고 익숙한 향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아, 아저씨 설마?”







내 시선을 느꼈는지 기사 멋쩍게 웃기 시작한다.







“아아, 밑에 떨어졌던 거예요. 어차피 버릴 거, 제가 그냥 손으로 털고 입에 넣었습니다.”







차가 급정거하면서 주머니에 있던 껌 하나가 밑으로 떨어졌었나 보다.



용케 그걸 기사가 주운 모양이고.







“아, 뭐 떨어진 거니까 괜찮지 않습니까? 그나저나 정말 맛있군요, 이 껌.”







“후우... 뭐 어쩔 수 없죠. 단, 뱉을 때 고생 좀 하실 겁니다.”







“... 질겅, 질겅, 질겅”







기사는 대답하는 대신 연신 껌만 씹어 댔다.



내가 처음 껌을 씹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







......







“아, 여기서 세워 주세요.”







-끼이익







문래역 1번 출구 앞에서 택시를 멈췄다.







“질겅, 질겅, 예. 7000원 나왔네요. 질겅, 질겅, 와, 이거 단물이 계속 나오네요?”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하나를 꺼내 기사에게 건넸다.



그리고 거스름돈을 받은 후 문을 열었다.







“아 참, 그 껌 삼키지는 마세요.”







“예? 왜요?”







“처음 껌을 준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삼키면 안 된다고.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허허허. 알겠습니다. 그러죠 뭐. 감사합니다, 손님~.”







반응이 그저 그렇다.



오 주임처럼 씹다가 삼킬 게 눈에 훤했다.



어쨌든 택시는 제 갈 길로 갔고, 나 또한 몸을 움직였다.







......







......







-딩동, 딩동







“은비야 아빠 왔다~”







10시 30분.



결국 예상했던 시각에 도착하고 말았다.



그놈의 치킨이 나오는 데 10분이나 걸릴 줄이야.







“자기 왔어?”







현관문이 열리고 아내가 나를 반긴다.







“아빠~~~ 치킨, 치킨!”







아내 바로 뒤에서 내 딸 은비의 소리가 들린다.







“은비 너~ 맨발로 현관에 나오지 말랬지! 어서 들어가.”







아내가 딸을 나무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겨운 집 냄새가 물씬 풍겨 온다.







“후우. 오늘 정말 피곤했어. 재수 없게 당일치기 출장이라니.”







“그러게 말이야. 피곤할 텐데 어서 씻고 나와.”







“아빠, 치킨, 치킨!! 무슨 치킨 사왔어?”







귀여운 여덟 살배기, 내 딸 은비가 다리에 매달린다.



누굴 닮았는지 보면 볼수록 예뻐 죽겠다.







“짠~ 은비가 좋아하는 교촌치킨~”







은비의 얼굴에서 환한 웃음이 번지기 시작한다.







“와아~ 교촌이다. 아빠 짱!”







“은비야. 손 씻고 먹어야지. 잘 밤이니까 콜라는 조금만 마셔야 해. 알았지?”







“응응, 알았어.”







귀여운 딸의 모습을 보니 쌓였던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았다.







“자기 밥은 먹었어?”







아내가 내게 물었다.







“아, 밥 아직 못 먹었어. 집에 뭐 맛있는 거 있어?”







옷을 벗으며 내가 말했다.



왠지 어제 마트에서 산 ‘3분 정통 스파게티’가 먹고 싶었다.







“그런데, 밥도 안 먹고 웬 껌을 그렇게 씹고 있어?”







“아아, 그냥. 나 어제 산 스파게티 좀 해 주라. 물은 조금만 넣는 거 알지?”







껌에 대한 대답을 대충 얼버무리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 받아 놨어~”







문 밖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서 빨리 물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이보다 편할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밥을 먹으려면 껌을 뱉어야 할 텐데,



아까처럼 몸에 이상이 올까 두려웠다.



하지만 이대로 밤새 껌을 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물 밖으로 손을 내밀어 아까처럼 퉤 하고 껌을 뱉었다.







“......”







괜찮았다.



침이 고이지도, 머리가 아프지도, 오한이 나지도 않았다. 단순히 과민했던 탓이었을까?



아까와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에 뱉을 때는 단물이 거의 다 빠져 있었다는 점이었다.







......







......







목욕을 마치고 목에 수건을 두른 채 밖으로 나왔다.



은비가 즐거운 표정으로 신나게 치킨을 먹고 있었고, 아내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그, 은비야, 옷에다가 닦으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하니.”







“으응, 알았어.”







먹는 모습을 보니 배가 몹시 고파 온다.







“자기야, 어서 와. 배고프겠다.”







아내가 자신이 있는 식탁 쪽으로 손짓을 한다.



식탁에 먹음직스럽게 차려진 스파게티가 눈에 들어온다.







“와, 마트에서 산 것치곤 엄청 먹음직스럽네. 거 봐 잘 샀지.”







식탁 앞에 의자를 빼 앉았다.



치킨을 먹느라 정신이 없는 은비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그러자 은비가 나를 보며 씨익 웃는다.



입 주위가 양념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은비의 귀여운 볼을 손으로 살짝 꼬집어 본다.







“세 개에 만 원이나 하는데 이 정도 때깔은 나와야지. 어서 먹기나 하셔~”







아내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포크를 움직여 스파게티를 먹기 시작했다.



유별나게 맛있지는 않았지만,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나쁘진 않았다.



허겁지겁 먹는 내 모습을 보며 아내가 살짝 미소 짓는다.



행복하다.



이 행복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







......







“은비야 이빨 닦고 자야지.”







“에에? 아까 닦았는데 또?”







“콜라 마셨잖니. 또 치과 가고 싶어서 그래?”







“아앗, 알았어, 닦을게. 이잉.”







......







......







침대에 몸을 뉘이자 마자 잠이 쏟아진다.



이미 시각은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6시에 일어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짜증이 밀려온다.







“피곤하지? 자기 밥 먹고 바로 자서 배 나오겠다.”







“으응... 뭐... 배 나오면 나랑 이혼할 거야?”







“어휴. 말 하는 것 좀 봐.”







아내가 나의 옆구리를 꼬집는다.







“나 먼저 잘게. 오늘 있었던 이야기는 내일 해 줄게.”







“알았어요. 낭군님. 어여 주무셔요.”







애교 섞인 아내의 말에 나도 모르게 살짝 입 꼬리가 올라간다.



그리고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왠지 껌이 꿈에 나올 것 같다.







......







......







-따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릉







......







......







-따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릉







......







......







-따르르르르릉







“......아, 뭐야......”







-따르르르르릉







“자기야, 전화 좀 받... 아 내 핸드폰이구나.”







-따르르르르릉







“오 주임이잖아? 이 새끼가 분명히 새벽에 전화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오.”







-따르르르르, 딸칵







“여보세요? 너 미쳤어? 지금 몇 시야!”







- ......







“여보세요? 왜 말이 없어! 졸려 죽겠는데. 빨리 용건 안 말해?”







- ...... 껌...... 좀 주세요.



화가 난다기보다,



혹시 이게 꿈인가 싶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 다시 말해 봐. 뭐라고?”







-...... 껌...... 껌이요. 껌 좀 주세요.







매우 가라앉은 진지한 목소리였다.







“너 지금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내가 어떤 상황인지 알면서 그런 소릴 해?”







나는 그저 황당하고 어이없을 뿐이었다.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생각 없이 행동한 적이 없었건만.







-...... 제발요. 저 지금 미칠 것 같아요. 제발, 제발요.







나 보고 대체 어쩌라는 건가.



지금 이 시각에 강원도까지 내려오기라도 하라는 건가.



내려갈 수 있다손 쳐도 출근 시각인 6시까지는 이제 두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오 주임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렇게 당부했잖아. 혹시라도 새벽에 전화할 생각 말라고. 그런데 기껏 전화해서 한다는 말이, 뭐, 껌 주러 강원도까지 오라고?”







노골적으로 기분 나쁜 티를 내며 말을 했다.



그러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수화기 너머로 무언가를 긁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봐 오 주임. 장난친 거라고 생각할 테니. 이만 끊자고. 몹시 불쾌했다는 것만 알아.”







-딸칵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개인적으로 아끼던 오 주임이었지만,



이런 예의 없는 전화 한 통으로 정이 뚝 떨어져 버렸다.



사람이 미워지는 것은 정말 순식간인 모양이다.



출장에서 돌아오면 단단히 혼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따르르르르릉







또 다시 벨소리가 울렸다.



발신자는 오 주임.



나는 한숨을 깊이 쉬며 전화를 받았다.







“야 이 새끼야. 너 미쳤어?”







다짜고짜 욕을 했다.



이제 명백히 화가 났다고 선언할 수 있다.







-...... 껌, 좀, 제발......







“야 오승원! 이 새끼가 좋게 봤더니, 완전 깨고 있네.”







나는 몹시 흥분했다.



새벽에 전화를 안 받아 본 것도 아니지만 지금은 너무 경우가 없었다.



무언가 부탁하는 자세도 전혀 안 돼 있었고, 자세가 되었다고 해도 억지 부탁이었다.



아니,



세상에 어떤 마음 좋은 회사원이 후배 직원에게 껌을 주기 위해 새벽에 집을 나선단 말인가.



그것도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 대리님. 제발......







그나저나 정말 절박한 목소리였다.



언제까지고 이런 대화를 할 수 없어 감정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후우. 대체 왜그래. 껌 못 씹으니까 그렇게 미치겠어?”







-...... 씨발! 껌 갖고 오라고 개새끼야!...







순간 당황했다.



갑자기 오 주임이 욕설을 내뱉는 게 아닌가,



그것도 매우 심한 욕설이었다.



나는 심한 충격으로 말없이 그냥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핸드폰의 배터리를 빼 버렸다.



불쾌한 건 둘째치고,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대체 그 껌이 뭐길래 이렇게 사람을 미치도록 만들었을까.







“자기야... 무슨 일이야. 이 새벽에 누가 전화한 거야?”







아내가 잠에서 깨어 눈을 비비며 내게 물었다.







“어, 아니 뭐. 알잖아. 저번에 집에 한 번 데려왔던, 오 주임이라고.”







아내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오 주임? 그 사람이 왜 이 시간에 전화를 해? 술이라도 마셨대?”







그러고 보면 술 취한 상태였을지도 모르겠다.



오 주임의 주사는 사내에서도 유명한 편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 술 취한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응, 아마 그런 모양이야. 내일 혼쭐을 내 줘야지. 미안해 자기야. 자자.”







......







......







“자기야 일어나. 늦겠어. 6시 10분이야, 10분. 어서 준비해야지!”







6시 10분이라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상체를 일으킨다.







“알람이 왜 안 울렸지? 아... 어제 배터리를 빼 놨지 참.”







침대 옆, 탁상 위에 핸드폰과 배터리가 분리되어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나는 황급히 그것들을 조립하고 핸드폰을 켰다.



로딩 화면이 지나자 은비의 사진으로 꾸민 대기 화면이 눈에 들어온다.







[캐치콜이 38건 있습니다.]







캐치콜.



통화 중이거나, 핸드폰을 꺼 놨을 때 걸려 왔던 전화를 문자로 보내 주는 서비스였다.



4시에 오 주임의 전화를 받고 핸드폰을 껐으니,



약 2시간 만에 38건의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는 말이 된다.







“뭐 해 자기야. 아침 차렸으니까 어서 씻고 나와!”







방 밖에서 아내의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나는 잠시 침대맡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 38건의 부재중 전화가 모두 오 주임에게서 왔다는 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할 뿐이었다.







......







......







“은비야 아빠 나가시는데 인사해야지.”







“하암... 아빠 안녕히 다녀오세요. 아우 졸립다.”







“자기 오늘 나 동창회 있는 거 알지? 저녁 차려놓고 나갈게.”







“엄마, 나는?”







“은비는 엄마랑 같이 가야지. 엄마랑 맛있는 거 먹고 오자.”







“정말! 와 신난다!! 아빠 나 엄마랑 맛있는 거 먹고 올게!”







......







......







“하아암.”







대체 몇 번이나 하품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턱이 안 빠지는 게 용할 정도로.







“김 대리는 하루 종일 하품만 하는구만. 어제 그렇게 피곤했나?”







두툼한 서류 뭉치를 책상에 탁탁 두드리던 박 과장이 내게 말했다.



40대 초반으로, 안경을 쓰고 앞머리가 조금 벗겨졌다.



지극히 샐러리맨답게 생겼다고 해야 할까?







“아, 예. 조금요. 가뜩이나 힘든데 새벽에 오 주임이 술 먹고 전화까지 했거든요.”







내 말을 들은 박 과장이 잠시 손을 멈춘다.







“응? 오 주임이? 그래서 오늘 아침에 전화를 안 받은 거구만.”







“아, 예. 뭐... 다른 사람들도 안 받던가요?”







“내가 건 사람들은 다 안 받았어. 이 주임이랑, 양 주임이랑, 양 대리까지.”







단체로 전화를 안 받는다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저, 오 부장님은요? 오 부장님께는 해 보셨어요?”







박 과장이 고개를 젓는다.







“상사한테는 안 했어. 뭐 중요한 전화는 아니었으니까 상관없지만. 기획서 오늘 오후까지 내는 거 알지?”







“예, 지금 쓰고 있어요. 아 그런데 너무 가혹한 거 아닙니까. 당일 출장 바로 다음날에 기획서라니.”







내가 말하자, 박 과장이 눈을 부릅뜬다.



나는 그 모습에 꼬리를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미리 미리 해 놓으면 좋잖아. 질질 끈 게 누군데 그래. 김 상무님 결재니까 깔끔하게 해야 된다.”







“예, 예.”







골치가 아파 온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김 상무한테 급조한 기획서가 통할 리가 만무했다.



갑자기 어제 씹었던 껌 생각이 났다.



생각만으로도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왠지 그 껌을 씹고 있으면 일이 잘 될 것만 같다.



주머니를 뒤져 껌 하나를 빼 입에 넣었다.







-아그작







황홀한 단맛이 마치 전기가 흐르듯 온몸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왠지 껌의 개수가 줄어든 느낌이었다.



주머니에서 껌들을 빼내어 개수를 세어 보았다.







“셋, 넷, 다섯... 여섯.”







여섯 개?



내가 둘, 오 주임이 하나, 그리고 어제 택시 기사가 하나.



그런데 왜 여섯 개가 남은 거지?



열두 개를 받았으니 여덟 개가 남아야 되는 거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껌 두 개의 행방을 추측할 수가 없었다.



결국 택시에서 흘릴 때 두 개를 더 흘린 모양이지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







......







기획서를 마무리하고 나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때쯤 되면 늘 즐거운 기분이 들었는데,



오늘 저녁은 혼자 먹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인지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방금 전까지 정리한 서류들을 파일에 끼워 보기 좋게 꾸며 놓는다.



기획서와 함께 김 상무에게 보여 줘야 할 중요한 서류들이었다.



그런데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들어 보니,



박 과장이 급하게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요란스럽게 문을 열더니 내 앞으로 다가왔다.







“김 대리, 김 대리. 아직도 전화 안 받는데, 이거 무슨 일 생긴 거 아냐?”







출장 간 사람들 얘기인 것 같았다.



아까와는 달리 이번엔 급한 용무로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아직도 안 받아요?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되었는데, 오 부장님도 안 받던가요?”







“응, 다 안 받아. 그런데 자네 오늘 시공 계획서를 나한테 줬던가?”







“예? 아니요. 그건 강원도에서 팩스로 직접 보내기로 했잖아요.”







박 과장이 잠시 숨을 골랐다.







“김 상무님이 지금 확인 좀 하자고 난리신데 큰일이네. 이것들이 뒤통수를 칠 줄이야.”







박 과장이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회사의 실권을 쥐다시피 한 김 상무에게 밉보여서 좋을 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오 주임한테 또 연락 오면 알려드릴게요. 너무 걱정 마세요.”







박 과장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그리고 기획서 완성됐으면 상무님께 가 보라고. 안 그래도 찾으시던데.”







올 것이 왔다.



나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준비한 파일을 옆구리에 꼈다.







......







......







“......”







“......”







“자네......”







“예, 상무님.”







“이걸 지금 기획서라고 가져온 건가? 이렇게 급조한 티가 팍팍 나는 종이 쪼가리를?”







“아... 죄송합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나름대로? 나는 그딴 말 하는 놈들이 제일 싫어! 나름대로라니. 그게 대체 무슨 염병할 놈의 기준이란 말이야.”







“죄송합니다.”







“기껏 회사 돈 들여서 강원도 여행도 시켜 줬으면 제대로 해야 할 거 아니야! 안 그래 김 대리?”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러니까 기획부가 쓸모없는 부서라는 소리를 듣지. 과장이란 인간은 여태 시공 계획서도 안 보여 주고 있고, 부하 직원은 기획서를 이 따위로 써 오고. 나 원 참.”







“죄송합니다. 원래는 부장님께 보여 드리고 최종적으로 상무님께 보여 드려야...”







“그래서 뭐. 부장용으로 썼다 이거야? 말이면 단 줄 아나 이 사람이!”







“죄송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고...”







“듣기 싫으니까 나가 봐. 박 과장이나 들어오라고 해.”







......







......







-아그작







입에 껌이 있는 상태에서 하나를 더 집어넣었다.



두 개의 껌이 입안에서 합쳐져 덩치 큰 덩어리를 만들어 낸다.



나는 그것을 난폭하게 씹기 시작했다.







“질겅, 질겅, 질겅, 김 상무. 개새끼. 질겅, 질겅, 질겅”







얼마나 욕을 먹었는지 퇴근 하고 한참 지났는데도 기분이 풀리질 않는다.



분을 삭힌답시고 청계천을 거니는 중인데, 꼴불견 연인들의 모습에 오히려 울화통만 더 치미는 것 같다.



한숨만 푹푹 쉬며 걸음을 옮기다가, 아무도 없는 벤치를 발견하고 그곳에 앉았다.



여러 색의 조명을 이용해 알록달록한 물줄기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은비와 함께 왔다면 어지간히 신기해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잠시 그 물줄기를 쳐다보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지나간 문자나, 사진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오 주임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안 받는다고 했는데 내가 하면 어떨지 궁금한 마음이 든다.



지체하지 않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우우우우







-뚜우우우우







-뚜우우우우







역시 받지 않는 모양이었다.







-뚜우우우우







-뚜우우우우







두 번만 더 기다려 보고 끊어야지.







-뚜우우우우







-뚜우우, 딸칵







받았다.



갑자기 당황스러워져 말문이 막힌다.







-예 대리님.







오 주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새벽의 긴박하고, 애절한 목소리가 아닌 평소의 목소리였다.







“어, 어 그래 오 주임. 조금 괜찮아?”







-예? 뭐가요?







“어제 술 좀 많이 마신 것 같던데, 괜찮아진 거야?”







-술이라니요. 술 마신 적 없어요.







“뭐? 그런데 너 새벽에 왜... 아니 그보다 과장님 전화를 왜 계속 안 받은 거야?”







-아...... 그건, 사정이 조금 있었어요. 단체로 핸드폰을 사무실에 두고 어디를 좀 다녀와서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단체로 핸드폰을 두고 어딘가를 가다니,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말이었다.


“아니, 왜 핸드폰을 두고 어디를 가? 핸드폰 반입이 금지된 곳이라도 있어?”







-음...... 뭐 그런 비슷한 거예요. 이젠 괜찮아요. 안 그래도 시공 계획서 지금 팩스로 넣고 있습니다.







이걸로 과장도 다행히 한시름 놓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정상적인 말투와 목소리라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새벽에는 다른 오 주임과 통화를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건 그렇고 오 주임, 오늘 새벽에 나한테 전화했던 거 기억나?”







내가 물었다.



내심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네, 기억나요. 새벽에는 죄송했어요.







순순한 대답이었지만, 오히려 이 대답이 나에겐 더욱 충격적이었다.



한마디로 의문만 증폭시킬 뿐이었다.







“껌 달라고 떼쓰던 게 다 기억난다는 말이지?”







내가 재차 물었다.



그 말대로라면 나에게 심한 욕설을 했던 것도 기억날 것이었다.







-네. 하지만 이제 다 해결됐어요. 대리님의 껌이 없어도 괜찮아요.







오 주임이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한다.



마치 ‘이제 껌을 충분히 구했으니 더 이상 귀찮게 할 일 없을 거다’ 라는 말로 들렸다.







“껌을 구했다는 거야?”







-구했다기보다는. 깨달았다고 하는 게 맞겠죠. 아 대리님, 끊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 잠깐만, 아직 물어보고 싶은 게 있...”







-딸칵







오 주임이 전화를 끊었다.



나는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껌만 소리 내어 씹었다.



내 귓가에는 오 주임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 계속 맴돌고 있다.







-깨달았다고 하는 게 맞겠죠.







대체 무슨 뜻일까.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추측할 수가 없다.









3.



아내가 재 놓은 안심 고기를 이용해 돈까스를 만들었다.



슈퍼에서 사 온 빵가루를 묻히고, 식용유를 잘 둘러 놓은 프라이팬에 고기를 튀긴다.



튀겨지는 동안 다지기를 이용해 참깨를 갈았다.



고소한 냄새가 풍겨 온다.



소스는 아내가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을 꺼냈고, 밑반찬은 간소하게 차렸다.



방울토마토와 양배추, 오이 등이 담긴 샐러드를 가운데에 놓고,



김치와 오이지를 작은 접시에 담아 양 옆에 두었다.



자, 이것으로 세팅은 끝났다.



이제 튀겨진 고기를 접시에 담아 오는 일만 남았다.







......







......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딸칵







“여보세요?”







-아 자기 집에 들어왔어?







“응, 지금 밥 먹는 중이야. 고기 잘 재 놨네. 맛있어.”







-신경 좀 썼지. 나 지금 막 동창들 만났어. 늦지 않게 들어갈게.







“그래, 모처럼이니까 재밌게 놀다 와. 은비 때문에 안 불편해?”







-은비 지금 잠들었어. 식사 나오면 깨워야지. 동창들이 귀엽다고 좋아하네.







“역시 우리 딸은 어딜 가도 환영을 받네. 알았어. 끝날 때쯤 전화해. 끊어~.”







-딸칵







......







......







한 손으로 핸드폰을 꼭 쥐고, 나머지 손으로 리모컨을 이용해 티비 채널을 돌린다.



마침 푸드 채널에서는 태국 고추를 이용한 놀랍도록 매운 요리가 소개되고 있었다.



열시가 넘으면서 부쩍 시계를 쳐다보는 횟수가 늘어났다.



지금도 시계를 쳐다보며 10시 15분인 것을 확인했다.



방금 전에 입에 넣은 껌에서 씹는 족족 넘치도록 단물이 흘러나온다.



이제 껌은 네 개밖에 남지 않았다.







......







......







-여보세요? 자기야 나야. 미안해. 많이 늦었지? 응. 어 아니.



동창 중에 한 명이 갑자기 밥을 먹다가 쓰러져서 지금 응급실에 와 있어.



응? 어 어. 은비는 옆에서 자고 있어. 자기 먼저 자. 어.



동창들 아무도 집에 안 갔는데 혼자만 집에 간다 그러기가 좀 뭐해서.



그래도 이따가 슬쩍 먼저 나오려고. 아무래도 은비도 있으니까. 어 어.



아 무슨 떡 종류를 먹다가 식도에 걸린 것 같아.



얘가 조금 급하게 먹는 버릇이 있거든. 아휴. 걱정이야. 응.



그렇게 됐으니까 계속 기다리지 말고 시간 늦으면 먼저 자라고.



응. 사랑해 자기야~







......







......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벽에 걸린 시계의 작은 바늘이 숫자 12를 약간 넘기고 있었다.



아내는 어떻게 빠져나오겠다더니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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