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괴담] 껌3 (미완주의, 스압주의)
IP :  .139 l Date : 18-08-18 19:01 l Hit : 1435
“아, 예. 오 부장님이 그렇게 되고나서 직원들은 거의 패닉상태에 빠졌어요. 저 또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렸죠. 그때 오 주임이 나타나 모두에게 소리쳤어요.”







“그 새끼가 뭐라고?”







“경찰에 신고했으니 진정들 하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 광경을 본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버렸어요.



대부분이 1층, 2층 사람들이었죠.”







필중이 계속 말을 이었다.







“걔 중에는 저와 같이 그냥 사무실로 돌아간 사람들도 있었어요. 미친 짓이었죠.”







“그게 언제 일어난 거야?”







필중이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는다.







“아, 그게, 어제 오전인데 음. 한 열 시정도였을 거예요.”







그래서 전화를 그렇게 안 받은 건가?







“그래서 경찰은 왔어?”







“아니요. 안 왔어요. 오 주임이 경찰을 불렀다는 말은 거짓말이었거든요.”







-우쉬위무이휘취







괴물의 소리가 들린다.



언제부턴가 문을 두드리는 것은 그만두고 있었다.



대신, 문에 찰싹 달라붙어서 끈적끈적해 보이는 몸을 비비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 후엔?”







필중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4층 사람들이 뭔가 이상하다는 말이 들리긴 했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죠. 그리고는 뭐, 보시는 그대



롭니다. 저렇게 생긴 놈들이 나타났죠.”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만약 내 예상이 맞다면 이 일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도 있었다.



필중이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데 대리님은 어떻게 껌을 씹게 되셨나요?”







필중의 말에 나도 모르게 당황을 했다.



뭔가 캥기는 생각을 해서 그런 모양이다.







“아, 아니, 뭐 어쩌다보니... 그러는 넌?”







대답이 애매해서 그런지 필중이 고개를 갸웃 거린다.







“저는 오 주임에게 받았어요. 저 말고도 대부분이 오 주임에게 받았죠.”







“대부분이라고?”







“예 맞아요. 대부분이요. 그리고 대부분이 껌 때문에 고생을 했죠. 아까 대리님처럼요.”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오 주임에게 껌이 떨어진 것은 분명히 두 눈으로 확인했던 일인데.







“오 주임, 오 주임은 어떻게 됐어?”







“글쎄요. 마지막으로 본 건 오늘 새벽이에요. 그때는 괴물들에게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뭔가 말이 안 맞는 게 있었다.







“괴물들에게 얘기를 했다고? 오 주임은 괴물이 되지 않은 거야?”







“예? 아 예. 4층 사람들 모두가 괴물이 된 건 아니니까요.”







이상하단 생각을 하고 나니, 그런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내 예상은 껌을 삼킨 사람이 괴물이 된다는 거였다.







그런데 왜 오 주임은 괴물이 되지 않은 걸까?



그리고 오 부장은 왜 괴물이 되지 않고 폭발을 한 거지?



그리고 오 주임은 왜 괴물에게 당하지 않은 걸까?



그리고 필중이 나에게 준 껌은 대체 어디서 난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증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모든 것이 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말이다.



“너 대체 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 거야?”







내가 아는 껌과 필중이 아는 껌이 서로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지금 씹고 있는 껌은 처음에 내가 아는 그 껌이 아니었다.



모양새도 그렇고, 맛도 그랬다.



다만 씹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특유의 중독성은 닮았다.



대체 어떻게 이 껌을 구하게 된 것일까?







“글쎄요. 씹지 않고 있으면 무척 괴롭다는 정도?”







필중이 말했다.







“오 부장님이 껌으로 변했다는 건 무슨 말이었어?”







하나씩 의문을 풀어나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오 부장의 일은 단연코 미스테리였다.



현재로서 가장 이치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치를 따질 상황은 전혀 아니었지만.







“그거야 지금 씹고 계시니 알 거 아닙니까.”







순간 턱의 움직임이 멈췄다.







“뭐... 라고?”







필중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엑? 껌에 대해서 잘 아는 거 아니었어요?”







대체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건가.



지금 내가 씹고 있는 껌이 오 부장이라도 된다는 건가?







“이 껌 정체가 뭐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예상이 틀리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오 부장님이에요. 아마 허벅지 부분일 거예요.”







“퉤!!”







필중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껌을 뱉어 버렸다.







“씨팔. 왠지 비리다고 생각했는데, 그럼 내가 생살을 씹어대고 있었다는 거야?”







필중은 여전히 의아한 표정이었다.



새삼 왜 이러냐는 듯 했다.







“전혀 모르는 것처럼 하시니 당황스럽네요.”







“내가 이 껌이 오 부장인 걸 어떻게 알겠어. 나는 오 부장이 그렇게 변한지도 몰랐는데!”







그렇게 말 하며 바닥에다 마른침을 연신 뱉어냈다.



점점 역겨운 기분이 올라왔다.







“아. 그럼 아까 씹던 껌은 어디서 구하신 거죠? 다른 껌인가요?”







필중이 알고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짐작이 갔다.



내가 맨 처음 가져왔던 껌에 대해 필중은 모르는 게 분명했다.



껌을 삼키지 말라고 했던 경고도, 그 음식점 주인의 괴상한 말조차도 말이다.







“우선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나머지 아는 것들을 내게 말 해줘. 잘 들어야 해.”







“예? 아 예. 알겠어요.”







이제 내가 아는 것들을 말할 차례다.



그래봐야 그곳에서의 짧은 체험담에 불과하지만.







......







......







-콰앙! 콰앙!!







잠자코 있던 괴물이 또 다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 나도 이야기를 끝내고 있었다.







“내 예상은 그래. 삼키지 말란 말을 무시하고 삼켰기 때문에 지금 저렇게 변한거지.”







필중은 잔뜩 표정이 굳어있는 상태였다.







“그럼 대리님과 오 주임이 가져오신 껌이 문제가 된 거군요?”







싸늘한 말투였다.



하지만 이 정도는 감수할 작정으로 꺼낸 말이었다.







“내 탓이 없다고는 못 하지만, 정확히는 오 주임이 다른 사람들에게 껌을 주었기 때문이지.”







“그 껌은 제가 드린 것 하고 다른가요?”







그 껌을 떠올려봤다.



그 넘치도록 흐르던 단물과, 삼키고 싶은 욕망이 간절해지는 식감, 계속해서 씹게 만드는 엄청난 중독성 등등.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흘렀다.



모양 또한 시중에서 파는 껌과 비슷했다.



그런 점에서 필중이 줬던 껌과는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았다.



중독성만 빼고 말이다.







“다르지 엄청. 자 이제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지?”







필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믿기 힘들지만 지금으로선 가장 그럴싸하네요.”







여전히 거슬리는 말투였다.



어쨌든 껌을 삼켜서 괴물이 되었을 거라는 나의 말에 수긍은 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의문은, 오 주임도 껌을 삼켰는데 왜 괴물로 변하지 않았냐는 거지.”







내 말을 들은 필중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그러네요. 오 주임도 삼켰다면 뭔가 변화가 있어야 맞는...”







말하던 중 필중의 표정이 갑자기 변한다.







“아. 그러고 보니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어요.”







“뭔데?”







필중이 침을 한 번 꿀꺽 삼킨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오 주임을 빼고 나머지 4층 사람들은 괴물이 된 것만 봤으니까.”







내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니까 오 주임 팔에, 뭔가 뜯긴 자국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식으로 구멍이 숭숭 나 있었어요.”







“......”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비슷한 모습을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 그리고 또?”







“예? 음... 일단 그게 다에요.”







“아니, 괴물에게 얘기를 했다는 건 어떻게 된 거야. 사람을 습격하는 것 아니었어?”







사실 가장 큰 의문은 이것이었다.



오 주임은 대체 무슨 수로 괴물과 이야기를 했다는 건가.



다른 동료들의 얼굴이 붙어 있지만 이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그야말로 괴물과 말이다.



잠시 뜸을 들이던 필중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음. 글쎄요. 저는 단순히 같은 4층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원하던 대답은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 그러면 오 부장...윽...”







갑자기 두통이 몰려왔다.



껌을 뱉었던 탓일 것이다.







“아. 거봐요 대리님. 비위 상하는 건 이해하겠는데, 그런 것 따질 때가 아니라고요.”







필중이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예의 그 덩어리를 하나 또 꺼냈다.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엔 시뻘겋다는 점이었다.







“제가 씹으려고 남겨둔 건데 대리님 드릴게요. 맛이 아까보단 나을 거예요.”







이제 껌이라고 부르기도 싫었다.



시뻘건 덩어리.



아까전의 말대로라면 오 부장의 피가 아닌가?



살점도 비위가 상해 뱉어버렸는데, 지금 핏덩이를 내 입에 집어넣으라는 얘긴가?



두통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으... 너는 비위도 안 상해?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씹으란 말을 하는 거야?”







필중이 억지로 내 손을 펴 그 덩어리를 올려놓았다.







“대리님이 뭘 모르셔서 그래요. 선입견을 버리면 그렇게 이상한 맛도 아니에요. 평범하죠.”







필중이 계속 말을 이었다.







“물론 저도 처음엔 꺼려했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살고 싶으면 씹어야 하는데.”







손에 놓인 덩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시뻘건 덩어리는 정말 백 번 양보해도 혐오스럽기 그지없었다.



피라는 걸 몰라도 말이다.







“이걸 씹지 않으면 죽기라도 한단 말이야?”







귀에서 우웅 하는 소리가 들린다.



두통과 오한이 더 심해진 느낌이었다.







“맞아요. 그러니까 어서 씹으세요.”







“뭐? 죽는다고? 으으윽...”







필중의 표정이 아까보다 더 굳은 것 같다.







“눈앞에서 더 이상 사람 죽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어서 입에 넣어요!”







필중의 닦달에도 나는 감히 이 덩어리를 입에 넣지 못 하고 있었다.



나는 말 그대로 미식가다.



이런 것을 입에 넣었다간 아마 제정신으로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후우... 고집하고는. 힘으로라도 해야겠군요.”







필중이 말하면서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 손에든 덩어리를 빼앗아 난폭하게 내 입을 벌렸다.







“윽, 으으윽 이게 무..우읍..”







그리고 태 턱과 머리를 붙잡고 강제적인 상하운동을 시키고 시작했다.



어떻게든 씹지 않으려고 혀로 이리저리 굴려봤지만 결국 어금니 사이에 정확하게 껌이 걸리고 만다.







-아그작







단 한 번 씹었을 뿐인데 엄청난 양의 단물이 쏟아져 나온다.



물론 이것은 다 피겠지.







“흡, 어때요. 막상 흡, 씹어보니 흡, 괜찮죠?”







필중이 계속해서 내 턱을 움직였다.







“읍, 읍, 이제 됐으니까 이거 읍, 놔!”







말하면서 필중의 몸을 밀쳐냈다.



필중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걸로 보아,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맛 괜찮죠?”







나는 매섭게 필중을 노려보았다.



하긴 그렇게 나쁜 맛은 아니었다.



아까보다 조금 더 비렸지만 단물이 훨씬 더 풍부했고, 식감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이것이 오 부장의 피라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할 뿐이다.







“그렇게 보지 마세요. 따지고 보면 대리님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요.”







순순히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필중이 잘못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 때문에 필중이 이런 상황을 당하게 된 것이니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었다.







“흠, 흠.”







표정을 풀고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누가 뭐래? 단지 상사에게 예의 없게 군 것 때문에 그렇게 본 거야.”







필중이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쨌든 증세는 다시 좋아졌다.







“그런데 그 말 무슨 말이야. 껌을 씹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







“아아. 봤으니까요. 대리님처럼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껌을 거부하다가 죽은 사람들을요.”







“죽어? 이 증상이 계속 심해지다가 결국 죽는다는 얘기야?”







슬슬 필중의 표정에서 짜증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그렇다니까요. 대부분은 여자들이었어요.



곧 죽어도 이것만은 못 먹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결국 죽어 버리더군요.”







정리해보면,



껌을 씹다가 뱉은 것만으로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인가?







“그럼 애당초 처음부터 안 씹었으면 됐잖아. 대체 그걸 왜 씹은 거야?”







갑자기 필중이 무서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기억에서, 참기 힘든 무언가를 떠올렸기 때문일까.







“그래서 오 주임이 개새끼인거에요.”







필중이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하나를 핀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대부분이 괴물들에게 당했지만, 3층에서 4층으로 도망간 사람들도 꽤 있었어요. 저를 포함해서 음, 아홉, 아니 열 명이었던 것 같네요.”







필중이 연기를 한 번 내 뱉고 말을 이었다.







“그때는 이곳이 아니라 405호였어요. 다른 사무실보다 크고, 쾌적했죠. 물론 지금은 끔찍하게 변했지만.”







-콰앙!!







그때 들리는 괴물의 소리.



하지만 이제 이 소리에도 심드렁했다.



여전히 저주스러운 모습이긴 했지만 말이다.







“모두가 공포에 떨고 있을 때, 오 주임이 유유히 들어왔어요. 웃고 있었죠. 그리고 자신은 괴물에게 당하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이유를 물었더니 그게 껌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우리에게 껌들을 내밀었어요. 지금 제가 갖고 있는 그대로였죠.”







이 들이 오 주임에게 속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로 내가 껌을 씹고 있었는데도 괴물에게 끌려갈 뻔했지 않은가.







“그 새끼가 또 거짓말을 한 거군.”







필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했다.







“맞아요. 거짓말이었죠.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어요. 그리고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그 덩어리들을 입에 넣고 씹었죠.



그때는 이것이 오 부장의 몸인지 뭔지 알 턱이 없었어요. 그냥 이상하게 생긴 껌이구나 할 뿐이었죠.”







“어떻게 그것이 오 부장의 몸이라는 걸 알아낸 거야?”







“예, 계속 들어보세요. 그렇게 우리는 껌을 씹었어요. 그리고 이제 괴물에게 당하지 않을 테니 나가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죠.



그래서 아마 그때 네 명 정도가 먼저 밖으로 나갔을 거예요. 하지만 결과는 뭐 대충 예상하실 거예요.



세 명은 괴물에 끌려가고, 한 명만이 겨우 겨우 도망쳐 돌아왔어요. 그때 우리는 알게 된 거죠. 오 주임에게 속았단 것을“







여기까지 말 하고 필중이 담배를 한 모금 더 빨았다.



그리고 길게 연기를 내 뿜은 다음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그 돌아온 한 명이 402호에서 오 주임의 모습을 본 거에요. 오 부장의 덩어리를 손으로 뜯고 있는 모습을요.



그리고 그 뜯은 덩어리는 우리가 입에 넣었던 것과 일치했고요.”







말을 듣다보니 필중이 얼마나 끔찍한 하루를 보냈는지 알 것 같았다.



시시각각 죽음과 맞서서 겨우 살아남은 게 아닌가.







“껌이 오 부장의 몸이라는 걸 안 순간 우리 모두가 껌을 뱉어 버렸죠. 아까 대리님처럼요.



그리고 생전 처음 겪는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정말 영문도 모른 채 말이죠. 오 주임은 그 이후에도 몇 번씩 찾아왔어요.



하지만 이제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껌을 씹으면 나아질 거라는 말조차도 말이죠.”







필중이 어느새 다 핀 담배를 바닥에 눌러 불을 끈다.







“뭐 별수 있나요. 도저히 참을 수준이 아닐 정도가 되었을 때, 딱 한 번만 더 믿어 보기로 했습니다. 단순한 자기 합리화였죠.



하지만 놀랍게도 이번엔 진짜였어요. 껌을 씹으니 나아진 거예요. 저를 비롯해서 네 명 정도가 그렇게 살아났어요.



하지만 나머지는 그러지 못했죠. 끝까지 그 껌을 거부했기 때문이에요.”







“그래. 그러다 결국 죽었다는 말이군.”







대충 상황을 알 것 같았다.



왠지 오 주임이 “깨달았다”라고 말했던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오 주임은 정말 개새끼에요! 이것만은 확실하죠.”







여전히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필중이 말했다.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 주임과 눈이 마주칠까봐 시선은 밑으로 내린 채로 말이다.







“그런데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어?”







아무리 오 주임의 거짓말 때문이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면 재차 신고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신고는 몇 번이고 했습니다. 제가 한 것만 여섯 번도 넘을 거예요.”







“그런데 왜 안 와?”







“그걸 모르겠어요. 안개 때문에 대원들이 길을 헤맨다니 어쩐다니 이상한 말만 해대고.



지금 사람이 몇 명이 죽었는지 아냐고 따지니까, 되려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안개가 꽤 자욱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길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거기에 경찰이라면 길을 찾을 수단은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단순히 길을 잃었다는 말로는 변명거리가 되지 못한다.







“대한민국 짭새들 수준이 낮은 것은 알지만, 이렇게 신고를 많이 했는데도 늑장 대응을 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다시 한 번 해 보지 그래?”







필중이 뭔가를 말하려고 하다가 말며 고개만 끄덕였다.



어쩌면 ‘대리님이 직접 하시죠’ 같은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필중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사무실 전화로 하지 뭐 하러 핸드폰으로 해?”







“해 보세요 한 번.”







필중이 핸드폰을 귀에 댄 상태로 말했다.



책상 쪽으로 다가가 수화기를 들어 귀에 대 보았다.







-지지직,,지지직,,지지직







잡음이 너무 심해서 전화기가 되는지 안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 저 경찰서죠. 여기가 ...







필중에게 전화가 왜 이런 건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때마침 통화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직접 다른 책상들을 돌며 하나씩 전화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지지직, 지지직,







모두다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유선전화는 불통인 상황이었다.



이렇게 되자 떨어뜨렸던 핸드폰이 자꾸만 생각난다.



아내와 은비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예 빨리 좀 와주세요 제발. 예 예~







필중의 통화가 끝난 모양이었다.



마침 잘 됐다는 생각이 들어 그에게로 다가갔다.







“통화 끝났어? 뭐라든?”







필중이 통화가 영 불쾌했는지 좋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순찰차만 네 대를 보냈다고 하는데. 기다려보란 말 뿐이네요. 하아. 진짜 짜증나네.”







“그렇게까지 말 했으면 오겠지.



 그나저나 나 핸드폰 한 통화만 쓰면 안 될까? 우리 딸내미한테 오늘 못 간다는 말을 해 줘야 하는데.”







필중이 의아하게 나를 쳐다보다가 천천히 핸드폰을 건 냈다.







“핸드폰 없으세요?”







필중에게 핸드폰을 받자마자 슬라이드를 열어 아내의 번호를 눌렀다.







“아아. 여기 올라오다 떨어뜨렸어. 주울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그 높이면 아마 망가졌을 테니까.”







필중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뚜우우우우, 뚜우우우우













신호가 가기 시작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내일은 갈 수 있다고 말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은비에겐 치킨을 두 마리나 사 가겠다고 얘기 해야지.



교촌과 비비큐를 각각 한 마리씩 말이다.













-뚜우우우우, 뚜우우우우













-뚜우우우우, 뚜우우우우













-뚜우우우우, 찰칵,













전화 받는 소리가 들렸다.













6.



-여보세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늘 그렇듯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은비를 혼낼 때는 조금 날카로워 지지만 말이다.







“후우...”







아내의 목소리에 마음이 놓인 탓인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아내가 재차 물었다.



처음 보는 번호인데 걸자마자 한숨부터 쉬어서 그런지,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나야.”







짧게 한 마디 했다.







-어? 자기야?







단번에 알아챘지만 역시 의아해 하는 목소리였다.







“어. 은비는 자?”







-아니 아직. 음음. 이 번호는 뭐야? 음음.







밥이라도 먹고 있는 걸까.



손목을 올려 시계를 봤다.



열시 이십 분.



저녁을 먹기에는 늦은 시각이었다.







“아아. 후배직원 전화야. 내 게 지금 고장 났거든.”







-음음. 음음. 아휴 어쩌다가. 그런데 밥은 음음 먹었어?







“어. 뭐 대충. 그건 그렇고, 오늘 못 들어갈 것 같아.”







-왜? 음음 많이 바빠? 음음 은비가 자기 때문에 안자고 있는데. 음음.







“자세한 건 들어가서 말할게. 은비 어서 자라 그래.”







-음음. 음음.







아까부터 우물거리는 소리가 계속 거슬린다.



대체 뭘 먹길래.







“대체 입안에 뭐야? 통화할 때는 삼키든지, 뱉든지 하라고.”







-음음. 아아. 알았어. 잠깐만. 음음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꿀꺽’하는 소리가 들린다.



삼킨 모양이었다.







“뭘 먹은거야?”







-아. 별 거 아니야.







“뭔데? 맛있는 거면 나도 내일 해줘.”







-후후. 은비 바꿔줄게~







‘은비야 아빠야~’ 하는 아내의 소리와,



‘어 정말?’ 하는 은비의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우당탕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빠!!







은비였다.



방심하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러자 나를 지켜보고 있던 필중이 말했다.







“집에 무슨 일 있어요? 갑자기 왜 그렇게 놀라요?”







“아, 아냐. 그냥 딸내미가 소리를 좀 질러서 흐흐흐.”







어색하게 웃어주고 다시 통화에 집중했다.







“그래 아빠야. 깜짝 놀랐잖니.”







-아빠! 아빠! 음음. 오늘 음음. 왜 안 와~?







“아빠가 오늘 너무 바빠서 그래. 내일 일찍 갈게.”







-아아아아~ 치킨 치킨~ 음음. 치킨~







“은비 너~ 아빠보다 치킨이 더 보고 싶구나.”







은비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냐. 아빠가 훨씬 보고 싶어. 음음







가만히 듣고 있으니 은비도 뭔가를 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은비야. 그런데 지금 엄마랑 뭐 먹고 있었니?”







-응~ 음음 나 지금 껌 먹어~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껌이라는 말만 들어도 몸이 반응을 하는 모양이다.







“어, 어 그래. 은비야. 아빠가 며칠 전에 사준 치약껌이니?”







-아냐 그거~ 음음 엄마가 대빵 맛있는 껌 줬어~







갑자기 서늘한 기분이 든다.







“치,치약껌이 아니면 무슨 껌이야?”







-우웅~ 치약껌보다 음음. 훨씬 훨씬 음음. 백만배 달아 히히







치약껌보다 달다니.



살면서 수많은 껌을 씹어봤지만 어린이용 치약껌 이상 단 껌은 맛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단 껌을 찾기 힘들 거고.



그 껌만 제외하면 말이다.



그 껌.



그 껌?



순간 어제 잃어버렸던 껌 두 개가 떠오른다.







“은비야! 그 껌 어디서 낫니!”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은비가 깜짝 놀랐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아~ 깜짝 놀랐잖아! 아빠 바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몇 번 했다.



안 좋은 쪽으로 일부러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시중에 파는 껌일 것이다.



어쩌면 껌처럼 생긴 츄잉캔디일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진정 되는 것 같았다.







“미안해 은비야~ 그런데 엄마가 무슨 껌을 줬어~?”







-아빠랑 말 안 해 흥!







“은비야~ 아빠가 내일 치킨 두 마리 사갈게~ 교촌하고 비비큐. 어때?”







-저엉말?







“그럼~ 아빠가 언제 거짓말 하는 거 봤어?”







-와아아아! 음음. 아빠 내일 꼭 와야 해! 음음. 꼭이야 꼭!







치킨 두 마리에 겨우 은비의 마음을 풀 수 있었다.







“그럼 아까 아빠가 물어본 거 대답해줘야지~”







-응? 아아 껌 뭐냐구?







“그래. 엄마가 무슨 껌을 줬어?”







-음~







잠시 은비가 말을 멈추었다.



기억을 떠올리려는 모양이다.



우물거리는 소리만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대리님. 너무 오래 쓰시는 거 아니에요~”







필중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필중을 향해 다시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수화기 멀리서 ‘엄마 이 껌 아빠가 준 거 맞지?’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전에 사준 치약껌은 분명히 아니라고 했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사다준 껌이 있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니 반드시 생각해내야만 한다.



잠시 후,



‘어 맞어.’ 하는 아내의 소리와 함께 다시 수화기를 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이거 엄마가 세상에서 두 개 밖에 없는 껌이라고 했었어.







“응? 은비야 그게 무슨 말이야?”







-아빠가 우리 주려고 세상에 두 개 밖에 없는 껌을 사왔다고 했어.







“아빠가?”







-응 아빠가 음음.







“대리님. 왜 그러세요. 껌 뱉으셨어요? 표정이 왜 그렇게...”







내 표정을 보던 필중이 말했다.



내가 내 얼굴을 볼 순 없지만 아마 처참하게 일그러진 것이 분명하다.



겨우 진정시킨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두 배는 더 맹렬히 뛰는 것 같았다.







“으, 은비야. 호, 혹시. 그, 그, 그거 아빠 주, 주머니에 있던 거냐고 어, 엄마한테 물어봐”







입이 덜덜 떨린다.







-으응 알았어~ 엄마~!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그리고 입술은 바짝 마른다.



혓바닥으로 연신 입술을 축이지만, 임시 처방일 뿐 순식간에 다시 말라버린다.



잠시 후 은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여전히 천진난만한 목소리였다.







“으, 응. 으, 은비야. 뭐, 뭐래?”







-응. 맞대. 음음







“......”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대리님? 대리님?”







필중의 소리가 마치 스테레오처럼 울려서 들린다.



이미 정상적인 사고회로가 어긋난 모양이다.







-아빠! 아빠!







하지만 은비의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은비야. 은비야. 아빠 말 잘 들어. 은비야. 은비야.”







-알았어 아빠. 음음. 왜 똑같은 말 해. 음음.







“하아. 하아."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은비야. 후욱. 지금 씹고 있는 껌. 절대로 삼키면 안 돼. 알았지?”







-응? 왜에. 음음. 이 껌 너무 맛있어서 이제 삼키려구 했는데. 음음







절대 이 껌을 삼켜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어떻게 삼키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겨우 여덟살짜리한테 그런 인내심을 바랄 수 있을까?







“이건 아빠랑 게임하는 거야.”







-응? 무슨 게임~?







절대 삼키지 않게 해야 한다.



절대 삼키지 않게 해야 한다.







“아, 아빠가 올 때까지 은비가 껌을 계속 씹고 있으면. 아빠가, 아빠가 똑같은 껌을 또 줄게!”







일단 되는대로 말 해 버렸다.







-어? 정말? 세상에서 두 개 밖에 없는 거 아니었어?







은비의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혀 우물쭈물 하며 말이 나왔다.







“아, 그, 아, 뭐. 아, 아냐. 은비야. 이건 그 껌보다 더 맛있는, 세상에서 하나 뿐인 껌이야~”







그래도 겨우 임기응변은 해냈다.







-흐음~







잠깐 뜸을 들을 들이더니,







-알았어 아빠. 나 안 삼킬게.







은비가 말했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큰 한숨이 나와 버렸다.







“은비야. 꼭이야. 아빠랑 게임하는 거니까. 꼭 지켜야 해. 알았지? 약속~”







-응응 알았어.







“은비야. 그럼 이제 엄마 좀 바꿔줄래?”







은비보다 아내가 더 문제였다.



아까 전에 분명히.



분명히.



분명히, 삼켰다.







-여보세요?







“너, 너!! 아까 삼킨 거 뭐야. 뭐냐고!”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







내 예상이 맞다면,



내 예상이 확실하다면.







“뭐냐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은비한테 안 들었어?







문에 몸을 비비고 있는 괴물의 모습이 보인다.



처참하게 찌그러진 몸뚱이에 세 사람의 얼굴이 붙어 있다.



팔과 다리는 아무렇게나 붙어서 너덜거리고 있고, 괴상한 소리를 연신 내뱉고 있다.



저 들도 이틀 전에는 사람이었다.



껌을 삼키기 전에는 말이다.







“야 너! 니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어!?”







-응? 대체 왜 그러는 거야. 껌 삼킨 것 땜에 그러는 거야?







그래 맞아.



그런데 그냥 껌이 아니지.



삼키면, 괴물이 되는 껌이지.







“내 주머니서 뺐어? 확실히 그 껌 맞아?”







정신없이 큰 소리로 물었다.







-왜 그래 자꾸. 무섭게. 그 껌이 그렇게 중요한 껌이었어?







확신이 확실로 바뀌고 있었다.



나는 거의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되고 시작했다.







“야! 왜 남의 주머니에 손을 대! 너가 도둑이야?”







마음에도 없는 말이 막 나온다.







-대, 대체 왜 그래. 그 껌이 그렇게 아까워? 그 많은 것 중에 두 개가 그렇게 아까워?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가 따지기 시작했다.



미여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억지로 침을 한 번 삼킨 후 말을 꺼냈다.







“씨팔! 너 정말 삼켰니? 아 맞다. 토하면 되겠다. 자기야. 소금물 마셔. 어서 토하라고!”







-자기 정말 갑자기 왜 이래... 나 무서워. 무섭다고.







이미 껌을 삼킨 마당에 대체 무슨 말을 해 줘야 한단 말인가.



거기에 나 역시 괴물에게 습격당해 밀실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자기야.. 흑흑, 자기야.. 흐, 흐흑”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자, 기야... 나, 나 무서워. 왜 울고 그래...흐, 흐흑.







아내도 덩달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대리님! 대체 무슨 일이에요!”







필중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흐음, 흐음. 아, 아무것도 아니야. 끅, 흐음. 금방 끊을게. 미안하다 필중아.”







“그것 때문이 아니잖아요! 무슨 일이에요? 집에 무슨 일 생긴 거예요?”







참으려 해도 이 흐느낌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후배직원 앞에서 이게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들썩이는 어깨를 억지로,



억지로 멈추고 필중을 향해 말을 꺼냈다.




“흐읍. 필중아. 나 마누라한테 딱 이십 초만 얘기하고 끊을 테니까. 잠깐만 떨어져 줄래?”







필중이 납득하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뭔가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나는 필중이 충분히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 다시 핸드폰 수화기에 입을 대었다.







“자기야. 우리 처음 만난 날 기억하지? 학교 동아리에서 말이야. 흐읍. 그때도 자기 좋다고 따라다니던 놈들 엄청 많았잖아. 흐읍.”







-그 얘기를 갑자기 왜, 왜 하냐고! 으아아앙.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게 울었었는데 기억나? 뉴스 보고 울었잖아. 흐읍. 우리랑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어린 아이가 죽었다고 그렇게 울었었잖아. 흐읍. 나 그때 자기 참 푼수라고 생각했었어. 하하. 흐읍.”







-으아아앙!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흑흑.







“자기야, 아니 은영아. 내 말 잘 들어.”







-흑흑. 흐흐흑.







“지금부터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나만 믿고 견뎌야 해. 알았지?”







-흑흑, 흑흑흑







“어서 대답해! 알았지?”







-흑흑... 알았어.







“그래. 그래야 내 마누라지.”







-대체 무슨 일이냐고! 으아아앙!







나는 아무 말도 해줄 말이 없었다.



그리고 어떤 말도 해서는 안 됐다.



이 말만 빼고는.







“사랑해.”







-자기야, 자기...







전화기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 슬라이더를 거칠게 닫은 후, 물기어린 눈가를 오른 팔로 쓰윽 닦아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필중이 다가왔다.







“통화 다 끝나셨어요?”







굳은 표정으로 필중을 바라보았다.



이미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 뿐이었다.



단호한 목소리로 필중에게 입을 열었다.







“여기서 나가자.”



나가야 한다.



무조건 나가야 한다.



방법 따위는 모르겠다.



하지만 죽는 한이 있어도 나가야 한다.



나가서 아내와 은비를 구해야 한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집에 무슨 일 있어요?"







"필중아."







"예?"







"나가자."




이때 필중에게 비치는 내 모습이 어땠을까.



아마 갑자기 정신이라도 나간 것처럼 보였을 거다.







"다짜고짜 그렇게 말 하셔도, 대체 무슨 수로 여길 나가자는 거... 어? 대리님?"







필중이 계속 말했다







"우... 세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이 나온 모양이었다.



허겁지겁 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우, 울긴 새끼야. 누가 울어."







"아까 통화중에도 우시는 거 봤어요. 무슨 일이에요? 뭐 삼켰느니, 어쨌느니 하시던 것 같던데."







필중의 말에 안으로부터 용솟음치는 감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순간 울컥하나 싶더니, 이내 참을 수 없는 상태에 빠지고 만다.







"씨팔. 흐흑흑흑."







"이제 아예 대놓고 우시네. 참나..."







모르겠다.



아직 아내도, 은비도 어떻게 된 건 아닌데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다.







"아내가, 아내가, 그 껌을 삼켰어."







"뭐라고요?"







"그리고 내 딸은 그 껌을 씹고 있고.. 크흑...씨팔. 그러니까, 나가야 한다고!"







은비를 떠올리니 또다시 감정이 격해졌다.



나는 도무지 그 아이가 괴물이 된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그 아이의 입에서 괴상한 소리가 나는 것도, 그 아이의 얼굴이 이상한 곳에 붙어 있는 것도.







"아니, 아니 어쩌다가 그걸 씹었대요?"







"다 내 잘못이야. 내가 그 껌을 가져오면 안 되는 거였어. 차라리 내가 삼켰으면 삼켰지.



왜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가족이... 니미! 씨팔!"







흥분한 나에게 필중이 손을 내밀어 한 쪽 어깨를 붙잡았다.







"진정하세요. 마음은 알겠는데, 이성적으로 생각하자고요."







"흐흐흑..."







필중의 말이 맞았다.



우선은 이성을 찾아야 한다.



아내에게는 나만 믿으라고 해 놓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억지로 침을 삼켜가며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나를 필중이 물끄러미 보고 있었고, 어느 정도 뜸을 들인 후 입을 열기 시작했다.







"용케 나가서 집으로 갔다고 쳐요. 그 다음엔 어떻게 하실 거예요? 무슨 해독제라도 있나요?



눈앞에서 부인이 괴물로 변하는 걸 보고 싶으신 건 아니잖아요."







직설적이라 거슬리긴 했지만 틀린 말은 없었다.



당장 집에 간다고 아내를 구할 방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눈앞에서 괴물이 되기라도 한다면 그거야말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은비는 어쩌란 말인가.



은비까지 껌을 삼킨다면 나는 아마 미칠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충분히 정상은 아니었지만.







"후우. 그래 너 말이 맞다. 후우, 후우. 쪽팔리게 씨팔. 후우 후우."







숨을 골랐다.



이성을 찾는 데도 역시 은비 생각이 최고였다.







"후우. 후우. 아? 아. 그 집! 그 집으로 가 봐야겠어!"







"예? 무슨 집..."







"처음 이 껌을 받았던 곳 말이야. 그 집 주인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 거야. 이 일의 장본인이니까."







필중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 사이 나도 여러 생각을 떠올렸다.



특히 그 음식점 주인의 모습,



분명히 팔 여기저기에 살점이 뜯겨져있었다.



잘은 몰라도 정황상 그 껌의 영향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필중의 말로 볼 때, 오 주임도 그 주인과 비슷한 모습이 된 것 같았다.



그러니까 껌을 삼킨다고 해서 꼭 문 밖의 괴물처럼 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지금 상황에서는 팔에 구멍을 뚫는 상태라도 감지덕지해야 할 것 같았다.



아니,



아내가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괴물로만은 절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쨌든 일단은 그 가게로 가야한다.



그 주인장을 만나서 모든 비밀을 알아내야 한다.







“음... 다른 건 다 둘째치고 일단 저 괴물은 어쩔 겁니까.”







생각을 마친 필중이 말했다.



조금은 누그러진 말투였다.



그나저나 정말 저 괴물이 문제이긴 했다.



문 앞을 딱 막고 서서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는 저 녀석을 어떻게 돌파한단 말인가.







“그, 약점 같은 거 없을까? 가령 불에 약하다든지.”







“약점이 있었으면 제가 여기 갇혀 있게요?”







“음.”







괴물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다.



다행히 흥분상태는 많이 가라앉았다.



여전히 가슴은 뛰고 있었지만.







“저 놈만이 문제가 아니에요. 3층에는 저런 녀석들이 득실득실하다고요.”







“응? 득실득실?”







아까 전 좌측 통로에서 비치던 실루엣이 떠오른다.



괴물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껌을 삼킨 사람만 괴물이 되었다면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득실 득실이라니.



“우리가 4층으로 도망 온 이유가 그거에요. 저 녀석들은 3층을 거점으로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한 놈이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수가 많아지더라고요. 걷잡을 수 없을 지경이 되기 전에 사람들과 함께 나왔죠.



그때는 저렇게 문 앞을 떡하니 지키고 있지 않았거든요.”







“그럼 나온 김에 밖으로 나가지 그랬어.”







필중이 고개를 젓는다.







“이미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저 놈들이 지키고 있었어요. 어쩔 수 없이 4층으로 가게 됐는데,



3층과는 달리 한 녀석만 그곳을 배회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비교적 손 쉽게 우리는 405호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405로 들어간 이유는 내부가 크기도 했지만, 잠금장치가 2중이라 좀 더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잠깐만. 그런데 그 한 놈은 어떻게 피한거야?”







“예?”







“그러니까. 그 4층에 있던 한 마리의 괴물은 무슨 수로 피할 수 있었냐고.”







“아아.”







필중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 마리쯤은 피할 수 있어요. 아까도 비슷했잖아요.”







그 말에 문득 떠올랐다.



괴물에게 잡혔을 때 빠져나왔던 순간이 말이다.



두 번이나 괴물에게 붙잡혔고, 그때마다 내가 취한 행동은,



바로 껌을 뱉는 것이었다.







“껌을 뱉으면 괴물의 관심을 잠시 돌릴 수가 있어요. 일반껌이 아니라, 음 뭐라고 해야 하나, 오 부장 껌?



이것으로 말이죠.”







굳이 오 부장 껌만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처음에 내가 뱉은 껌은 오 부장과는 전혀 연관이 없었으니까.



어쨌든 이건 긍정적인 정보였다.



필중이 우려했던 문 앞의 괴물을 돌파할 최적의 수단이 분명했다.







“그럼. 여기서 나갈 수 있겠네. 껌을 뱉으면 되잖아.”







필중이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은 조금 달라요. 문에 찰싹 달라붙어 있기 때문에, 껌을 뱉기 위해 문을 여는 것 자체가 위험해요.”







“문을 열자마자 껌을 뱉으면 되잖아. 그게 뭐가 위험해?”







“잠금 쇠를 돌리면 저 괴물은 바로 들이닥칠 거예요. 행여 뱉기도 전에 얼굴을 붙잡히면 어떡할 거예요?”







“얼굴을 꼭 잡힌다는 보장은 없잖아. 그리고 껌을 뱉는 것은 순식간이야.”







“그것뿐이 아니에요. 용케 껌은 뱉었지만, 급하게 뱉느라 문 바로 앞에 떨어진다면 어떡할 거죠?”







가만 보니 얼마 안 되는 확률에 계속 연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기우쯤은 굳이 괴물이 없더라도 널려있는 게 현실이다.







“한 명이 잡히더라도 우린 둘이니까, 남은 한 명이 껌을 뱉으면 되잖아.”







“그...”







필중이 약간의 시간차를 주며 말을 했다.







“그 한 명은 누, 누가 할 건데요?”







“뭐? 무슨 한 명?”







“괴물에게 잡히는 사람 말이에요. 전 못해요. 저 괴물에게 절대 잡히고 싶지 않다고요.”







“괴물에게 잡히는 거, 내가 하면 되잖아.”







“하지만, 동시에 잡힐 수도 있죠.”







아무래도 필중은 여기서 나가는 것에 회의적인 모양이었다.



경찰도 불렀겠다,



괴물이 문을 열지도 못하겠다,



필중으로서는 아무리 확률 좋은 도박이라도 꺼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나는 나가야 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경찰을 기다릴 수 없고, 온다고 해도 저 괴물을 대체 어떻게 상대할 건지가 의문이었다.



헛기침을 한 번하고 말을 이었다.







“그럼 나 혼자라도 나가겠어. 단, 한 가지 부탁만 들어줘.”







필중은 긍정도, 부정도 취하지 않았다.







“제 정신이에요? 혼자서 여길 어떻게 나가요.”







“그러니까 부탁 하나만 들어달라고 하잖아. 들어줄 거야, 말거야?”







필중이 노골적으로 내 눈을 피했다.







“뭐, 뭔지 말이나 해 보세요.”







“내가 괴물에게 잡히면, 늦게라도 좋으니까 껌을 뱉어줘.”







필중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무슨 말을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보다 내가 먼저 말을 했다.







“알아. 동시에 잡힐 수 있는 위험 충분히 알아. 그러니까 내가 잡히는 걸 확실히 본 다음에라도 껌을 뱉어 달라고. 뒤늦게나마.”







“문은요? 문은 누가 열어요?”







“문도 내가 열께. 내가 열고, 내가 잡히면 되잖아. 넌 멀찌감치 보다가 내가 끌려가기 전에만 와서 껌을 뱉어 달라고.



그리고 내가 빠져나가면 그때 다시 문을 잠그면 되잖아.”







정말 최소한의 부탁이었다.



하지만 필중은 여전히 나의 눈을 피하며 대답을 못 하고 있었다.







“아까 전에는 괴물 앞에서 문까지 열어 나를 구했잖아. 이제 와서 그렇게 두려워하는 이유가 뭐야?”







그러고 보니 그때도 필중은 껌을 뱉어주지 않았다.



잡혀 있는 내게 껌을 뱉으라고 소리만 쳤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껌을 뱉는 것은, 그 행위로만 본다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닌데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어쩌면 뭔가 숨기는 것이라도 있는 것일까?







“말했잖아요. 눈앞에서 더 이상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그럼 말 다했네. 이번에도 내가 죽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을 것 아니야?”







“그, 그런.”







필중의 말을 듣기도 전에 이미 문 쪽으로 성큼성큼 가기 시작했다.



내게는 더 이상 필중을 설득할 시간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 그러지 말아요! 안 돼. 안 된다고. 이 껌은 뱉을 수 없어!”







필중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단지 이 껌은 뱉을 수 없다는 말이 조금 신경 쓰일 뿐이었다.







“갑자기 그 장기자랑이 떠오르네. 필승 말이야, 정말 대단했었어.”







필중에게 농담을 한 마디 건 냈다.



그리고 문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문 앞에 서자 괴물과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되었다.



다시 봐도 끔찍한 모습.



특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양 주임의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다가가자 괴물은 미친 듯이 몸을 흔들며 반응하기 시작했다.



까치발을 들고, 손을 잠금쇠 위로 가져갔다.



그러자 뒤에서 필중의 소리가 들려온다.







“안 돼! 안된다고!”







-끼익, 철컥.







잠글 때는 그렇게 안 잠가졌으면서, 열 때는 얄미울 정도로 손쉽게 풀린다.







“필중아. 너만 믿는...”







-벌컥!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괴물이 들이닥친 것이다.


NO SUBJECT DATE HIT
외치다 게시판 권한 재조정 안내 (6) 2020-02-10 4236
9351 [스레딕] 예뻐지는 팩 (26) 2018-10-13 8562
9350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 식물은 과연 존재할까? (5) 2018-10-09 15578
9349 [찾아줘]아들에 의해 살해당했으나 죽지않은채 일상생활을 이어간… (21) 2018-09-26 8140
9348 (찾아줘 글) 혹시 이 공포소설 기억하는 사람 있어?ㅠㅠ (2) 2018-09-25 4633
9347 오늘 꿨던 꿈이야기 (15) 2018-09-14 5545
9346 귀신 볼 줄 알았던 이모 썰 (15) 2018-09-12 7483
9345 (끌올) [펌] 산길 (17) 2018-09-11 7991
9344 공포방 글 대량 불펌 사이트 발견 (요약 수정) (45) 2018-09-07 6249
9343 이상한 꿈을 꿨어 (8) 2018-09-04 2290
9342 [찾아줘] 바람과 대화하는 냔 (11) 2018-08-28 2876
9341 군대에서 직접 겪은 경험 2 (9) 2018-08-22 1848
9340 군대에서 직접 겪은 경험 (10) 2018-08-21 3128
9339 찾아줘) 자살하는 이야기야. (7) 2018-08-20 2918
9338 껌5 (미완주의, 스압주의) (12) 2018-08-18 1630
9337 껌4 (미완주의, 스압주의) (2) 2018-08-18 1293
9336 껌3 (미완주의, 스압주의) (3) 2018-08-18 1436
9335 껌2 (미완주의, 스압주의) (4) 2018-08-18 1450
9334 껌1 (미완주의, 스압주의) (5) 2018-08-18 2189
9333 모텔탈출기 (21) 2018-08-18 5421
9332 신혼부부살인사건 (26) 2018-08-14 7330
9331 무서운 얘기 아님)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꿈의 배경 (16) 2018-08-13 2824
9330 who’s hungry? (5) 2018-08-10 2996
←←  1  2  3  4  5  6  7  8  9  10  


이용안내 / 광고및제휴문의 / 아이디/비번분실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