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괴담] 껌4 (미완주의, 스압주의)
IP :  .139 l Date : 18-08-18 19:04 l Hit : 1375
-콰악!!







그리고 껌을 뱉을새도 없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괴물에게 붙잡혔기 때문이다.



그것도 얼굴을.







“끄으으으으읍!!”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동안의 기다림으로 한이라도 서린 탓일까?



괴물이, 붙잡은 내 얼굴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우쉬치이추히우추”







괴물의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씨팔" 하고 욕을 내뱉는 필중의 소리도 들린다.











7.



“씨팔! 이것만은 안 된다고. 이것만은, 씨파알!”







이미 일은 벌어졌다.



내가 여기서 당하면 필중 또한 무사하지 못 할 것이다.



무슨 사정으로 주저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우쉬히우히취히







참기 힘든 비릿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얼굴 전체에는 끈적끈적한 느낌이 가득하다.







“끄으으윽.”







아귀힘이 조금 더 강해진다 싶더니, 급기야는 지면에서 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필중에게 모든 것이 달려있다.



필중이 껌을 뱉어주지 않는다면 나를 비롯해 내 가족까지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될 것이다.



아내와 은비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내가 이대로 죽으면, 이대로 죽어선, 이대로 죽는다면......



안 돼. 안 돼!



제발 껌을 뱉어줘!







“퉤!!”







내 염원이 닿았던 것일까?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효과음이 귀에 꽂혔다.



그리고,







-우쉬히우히취히퀴퀴!







괴물의 격양된 소리가 들려온다.



이윽고 손아귀 힘이 점점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얼마 안 있어,







-털썩.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괴물에게 풀려난 것이다.







“흐읍, 흐읍, 흐읍!”







나는 그 상태로 격하게 숨부터 몰아쉬었다.



비릿한 냄새가 계속 코 주위를 맴돌고 있는 탓이었다.







“어서 나와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일그러진 표정으로 필중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상태로 다시 고개를 조금만 틀어보았다.



껌에 정신이 팔려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괴물이 보인다.



어째, 아까보다 더 심하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지금 여유부리는 거예요? 어서 나와요!”







“알고 있어!”







다리가 후들거려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더 이상 후배직원에게 쪽팔린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씨팔. 일을 저질렀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잡아요!”







어느새 필중이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고 있었다.







“다리가 풀려서 그런 건 아니야. 흐으읍.”







머쓱한 변명을 하며 필중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오줌까지 쌀 정도였으면서 잘도 그런 말을 하시네요.”







이런.



찔끔 지렸다고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티가 날만큼 지린 모양이다.



그러니까 바지에 오줌을 말이다.







“이런 상황에 상사 거시기나 쳐다 보냐?”







“됐으니까 어서 가요. 어서!”







필중의 도움을 받으며 문 밖으로 달렸다.



그리고 곧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좌측이냐, 우측이냐.







“어, 어디로 갈까요.”







잠시 생각한 후에 필중의 말을 받았다.







“우측. 우측으로 가자.”







“음. 무슨 이유라도 있어요?”







“저 괴물이 그 쪽에서 온 거거든.”







“다른 괴물은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제가 분명 득실..”







내가 말을 끊었다.







“알어. 그래도 확률적으로 그나마 낫잖아.”







필중이 딱히 납득하기 힘들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디든 마찬가지잖아. 우선 가자고 어서!”







“알았어요. 알았어.”







필중과 함께 우측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402호 앞까지 도달했을 때 나는 걸음을 멈춰야만했다.







“잠깐만!”







갑자기 걸음을 멈추니, 나를 부축하고 있던 필중의 몸이 앞으로 휘청했다.







“아 뭐에요 갑자기!”







“손전등! 손전등을 주워 와야 해!”







아까 전에 문 앞에서 떨어뜨린 손전등이 생각난 것이었다.







“제 핸드폰으로 비추면 되잖아요. 지금 어떻게 다시 가요!”







아니, 핸드폰 불빛만으로는 힘들다.



괴물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야 확보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있어야 해. 나 이제 괜찮으니까 내가 갔다 올게.”







필중의 목에 걸쳐있던 오른팔을 제자리로 가져왔다.



그리고 몸을 돌려 403호 앞을 향해 뛰려는 순간,



필중이 내 팔을 붙잡았다.







“후. 제가 갈게요. 이번엔 대리님이 껌을 뱉을 차례잖아요.”







말을 마친 필중이 몸을 움직였고, 어쩔 수 없이 내가 그 뒤를 따랐다.



필중은 403호 문 앞으로 되돌아가 신속하게 바닥에 떨어진 손전등을 주웠다.







“자, 됐죠? 그럼 어서 가...커헉!”







터져오는 필중의 신음소리.



그의 발을 휘감은 이형적인 모습의 손이 무엇 때문인지를 짐작케 해주었다.







“부, 붙잡혔어요 으아아악”







필중의 몸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채 문 안쪽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상황 보고 있을 겨를이 없다.



어서 필중을 구해야 한다.







“퉤!”







급하게 뱉은 껌이 원호를 그리지 못하고, 직선으로 뻗어나가 지근거리에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괴물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한 모양이었다.



필중이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자 가자. 어서, 어서!”







“받아요, 손전등.”







필중이 건 낸 손전등을 손에 쥐고 다시 우측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필중이 예의 그 오 부장 덩어리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두 개를 꺼냈는데 하나는 자기 입에 넣고, 하나는 나에게 주었다.



그것을 받아 입에 넣으며 슬쩍 필중의 바지를 쳐다보았다.



볼록 튀어나온 주머니에는 적어도 덩어리가 세 개 이상은 더 있어 보였다.







“껌이 다 떨어진 것도 아닌데, 아까는 왜 그렇게 뱉기 싫어한 거야?”







“......”







돌아오는 필중의 대답은 없었다.



어쨌든 우리는 우측 복도 끝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괴물과 조우했던 공포의 계단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런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곳을 핸드폰 불빛에 의지하면서 왔다니.







-딸칵







손전등의 스위치를 켰다.



그러자 화악하고 빛이 뿜어져 나온다.



핸드폰 불빛 따위는 상대도 안 되는 세기였다.



그 불빛이 어둠을 향해 둥그런 영역을 남기기 시작하자,



어두워서 보지 못했던 핏자국이나, 역겨운 잔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잠시 이리저리 손전등을 비춰보며 이곳저곳을 살폈다.



적어도 3층 계단에는 괴물이 없다는 확신이 든 후 필중에게 말했다.







“내려가자.”







필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숨을 죽인 채 한 계단씩 천천히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아까 그 껌 말이죠.”







중간쯤에서 필중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괴물 때문인지 매우 작은 목소리였다.







“그거. 오 주임이에요.”







“뭐?”







내 되물음을 무시하고 필중이 계속해서 말했다.







“자신의 살을 씹으면 괴물이 되지 않는다고 했어요. 절대 뱉지 말라고 그랬는데…”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필중이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내뱉는 사이 어느새 3층 마지막 계단에 발을 딛고 있었다.



그리고 2층 계단으로 몸을 돌리기 전 잠시 복도 쪽으로 손전등을 비춰보았다.







“흡!”







하마터면 소리를 낼 뻔했다.



손전등에 비친, 그야말로 득실거리는 괴물들의 모습을 본 순간 말이다.







“이런! 돌려요 어서! 빛을 보면 반응한다고요!”







“뭣?”







순간 한녀석이 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위휘쉬이위휘







그리고 그 특유의 괴성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다른 녀석들도 속속 몸을 돌리기 시작한다.







“씨, 씨발 뭐야!”







“괜히 불을 꺼놓은 줄 아세요? 뛰어요!”







손전등으로 2층 계단을 확인할 새도 없이 뛰기 시작했다.







-스르륵, 쿵







괴물이 우리를 좇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큰 실수를 저지른 것 같다.







“제가 뭐랬어요. 3층에는 득실득실 하다고 했죠?”







정신없이 달리느라 대답은 할 수 없었다.



이윽고 2층까지 내려왔다.



뒤쪽으로 들리는 괴물들의 소리가 여전히 우리를 쫓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1층 계단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산재하게 널려있던 오 부장의 덩어리가 떠올랐다.







“마지막 계단이야. 여기부터는 발조심 좀 해야할거야!”







“알았으니까 어서 계단이나 비춰요.”







이제 이 계단만 내려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지체할 시간은 없다.







-화악







1층계단을 향해 손전등을 비추었다.



그리고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뭐에요! 어서 내려가요!







필중이 외치며 내 어깨를 잡아 옆으로 재꼈다.







“갑자기 왜 멈추고 그…”







잠시 말을 멈춘 필중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씨발.”







내가 멈춘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계단을 떡하니 막고 있는 괴물이 보였기 때문이다.



잠시 지체하는 사이, 뒤를 쫓아오던 괴물들의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







“일단 제가 뒤 쪽에 껌을 뱉을게요. 대리님은 앞에다 뱉어 보세요.”







일단 필중의 말에 고개는 끄덕였지만 쉽지않아 보였다.



워낙에 덩치가 큰 괴물이 좁은 계단을 딱 막고 서 있으니 딱히 껌 뱉을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앞에다 뱉자니 관심은 끌지 몰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것 같았다.



괴물을 넘어 계단 밖으로 껌을 뱉는 것이 최선이었는데, 아무래도 괴물의 육중한 몸에 걸릴 것 같았다.







-퉤!







뒤 쪽으로 간 필중이 껌을 뱉은 모양이다.



쫓아오던 괴물의 속도를 조금은 늦췄으리라.



하지만 앞에서 오는 이 괴물에게는 도저히 답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든 괴물의 뒤 쪽으로, 웬만하면 계단 바깥으로 껌을 뱉어내야한다.



최대한 입에 힘을 주고, 호흡을 골랐다.







“퉤!"







그리고 뱉었다.



단언컨데 지금까지 중 가장 만족스러운 곡선을 그으며 날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환상곡선도 괴물을 지나치지는 못했다.



괴물의 몸 근처에 맞고 떨어져버린 것이다.



우려대로 괴물은 그 자리에서 몸을 쭈그려 자신의 발밑에 있는 껌에 신경을 쏟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계단 한 가운데를 막아선 채로 말이다.







“이… 이런.”







막 내게 다가온 필중이 그 광경을 봤는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이, 일단 내려가자. 저 놈을 밟고서라도 건너가자고!”







내가 말했다.



하지만 필중은 쉽사리 발을 떼지 못했다.







“무, 무리에요. 저렇게 막고 있는데.”







“방법이 없잖아. 그나마 지금이니까 가능한 거야.”







“무리에요. 하지만.”







필중이 잠시 눈을 지그시 감더니 뭔가 결심한 듯 입을 열기 시작했다.







“혼자라면 가능할 수도 있어요.”







“… 그게 무슨 말이야?”




필중이 눈을 떴다.



그리고 사뭇 비장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가세요. 제가 미끼가 될 테니.”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무, 무슨 말이야! 지금 같이 내려가면 돼. 어서 가자!”







먼저 한 걸음 내려가 뒤를 돌아봤다.



필중은 여전히 그 자리였다.







“저는 어차피 괴물로 변할 거예요. 사실, 아까 그 껌을 뱉으면 안 되는 거였거든요.”







“무, 무슨!”







괴물이 될 거라는 말에는 깜짝 놀랐지만, 미끼가 될테니 나만 살아 남으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내 가족을 살리기 위해 필중을 사지로 모는 꼴 아닌가.



그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어서 가세요! 놈 들이 다시 움직일 거라고요!”







“같이 가야해! 나만 살 순 없어!”







필중이 답답하다는 듯 발을 동동 굴리더니,



주머니에서 남은 껌 모두를 꺼내 입에 넣는다.



그리고 양 볼에 가득 찬 껌을 난폭하게 씹기 시작했다.







"질겅, 질겅, 질겅"







"너, 갑자기 뭐하는 거야?"







"질겅, 질겅, 질겅"







필중은 한동안 계속 껌을 씹는 데만 집중을 했다.



도무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질겅, 질겅, 질겅. 만약에 오 주임을 만나면 전해주세요. 퉤!”









필중이 껌을 손에 뱉으며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뱉은 껌을 꾹꾹 뭉쳐 손바닥 반 만한 크기로 만들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죽어서도 잊지 않겠다고.”







-우쉬이우히위히치







계단에 있던 괴물이 소리를 냈다.



손전등을 비춰보니 이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가슴팍에는 낯익은 여자의 얼굴이 표독스러운 눈매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대리님 잘 들으세요.”







필중의 말과 거의 동시에 괴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가 아까 미처 말하지 못한 것들이 있어요. 앞으로 대리님에겐 꽤 중요한 이야기일수도 있죠. 그러니까 음, 음.”







필중이 바지주머니를 뒤적뒤적 거리더니 핸드폰을 빼내, 내 쪽으로 내밀었다.







“이걸 가져가세요. 분명히 도움이 될 겁니다.”







얼떨결에 핸드폰을 받아버렸다.



어떤 도움을 의미하는지는 모르지만 통화를 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도 절실한 도움이었다.







“너, 대체 뭘 할 작정이야?”







“사실 방금 전까지 대리님을 원망했어요. 하지만 생각해보니 오 주임 그 새끼가 나만 멀쩡하게 둘 리가 없어요.



분명히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랬겠죠. 그러니 나한테만 지 살을 준 것이고.”







“너, 너 지금 무슨 말이야. 오 주임이 또 뭔가 한 거야?”







-우쉬히이위히취이







괴물이 불과 세 걸음이면 닿을 정도까지 다가왔다.



거기다 위층에서 들려오는 괴물의 소리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세요! 이제 정말 시간이 없어!”







필중이 소리치며 나를 옆쪽으로 밀었다.



그렇게 계단 난간 쪽에 몸을 붙인 자세로 필중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필중은 껌을 든 손을 정면으로 내밀면서 괴물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야 이 새끼야! 김필중!”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지만 어느새 필중은 괴물과 마주섰다.



그리고 내 쪽을 쳐다보며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어서 가라고!!”







-우쉬이히위취이!!







-콰악!







괴물이 필중의 손을 붙잡았다.



이제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다.



그저 필중의 바람대로 나라도 살기 위해 뛰어야 한다.







“씨, 씨팔. 김필중!!”







나는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껌을 세 개나 뭉친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괴물은 몸을 비집고 지나가는 나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결국 나는 손쉽게 괴물을 피해 나올 수 있었다.



그러니까 필중을 미끼로 말이다.







“대리님!”







괴물에게 벗어나 몇 계단을 더 내려갔을 때, 필중이 나를 불렀다.



재빨리 고개를 돌려 손전등을 비추었다.



하지만 괴물의 등에 가려 필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말소리만이 아직 필중이 그 앞에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장기자랑 때. 대리님 사회 죽여줬던 거 아시죠?”







“...별말씀을. 너야말로 필승 죽여줬다.”







“하하하. 고마워요 대리님. 정말 고마...”







-위쉬위휘이휘치







괴물의 소리가 들리면서, 필중의 소리가 끊어졌다.



아마 방금 전 고맙다는 말이 생 전 마지막 말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씨발... 누가 누구보고 고맙대.”







끓어오르는 슬픔을 간신히 억누르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계단을 모두 내려가기 전에 떨어뜨렸던 나의 핸드폰도 발견했지만 줍지 않았다.



예상대로 망가져 있었는데, 괴물이 밟기라도 했는지 거의 산산조각이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벽에 붙어있는 덩어리 하나를 떼어내는 것은 잊지 않았다.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씹어야 하니까 말이다.



내 주먹만한 덩어리의, 일부분을 뜯어 입으로 가져갔다.



어느새 친숙해진 비릿한 맛이 입 안 가득히 퍼진다.



그렇게 나는 한 손에는 오 부장의 덩어리를,



나머지 한 손에는 필중의 핸드폰을 쥔 채 1층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손전등의 범위 안에 괴물의 모습이 잡히지 않았고, 그것은 문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문 앞에 서서 잠시 호흡을 골랐다.



이제 이 문만 열면,



이 문만 열면 이곳을 나갈 수 있다.



핸드폰과 덩어리를 왼 손에 쥐고, 오른 손으로 문 손잡이를 잡았다.



- 아. 아. 동사무소에서 알려드립니다. 주민 여러분, 안개가 심하게 껴있습니다. 차량 운행은 삼가 주시



고, 밤길을 걸으실 때는 각별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







......







“후우우. 김필중... 나쁜 새끼.”







나는 잠시 문앞에 앉아 있었다.



괴물이 문을 열고 나올 확률도 배재한 채 그냥 그렇게 있었다.



아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당분간은.







“개새끼. 상사 엿 먹이는 것도 가지가지지. 지가 죽으면, 지가 죽으면. 하. 하. 하.”







웃음이 나오는 가 싶더니.







“큭, 큭, 크흑. 흑흑. 씨발.”







갑자기 울음이 나온다.



울다가 웃으면 어디에 뭐가 된다는 전설은 있다지만, 웃다가 울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 따위 썰렁한 생각이라도 해야 마음이 조금은 진정 될 것 같았다.







“좆같은 새끼. 웃냐?”







핸드폰을 열자마자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필중의 사진이 나타났다.



그리고 화면의 윗부분에는 ‘기다리면 열린다’ 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해 볼 요양으로 슬라이드를 열었는데 감히 다른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지금 이 화면을 넘기면 왠지 필중을 두 번 죽이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정말 쓸데없이 거룩한 고정관념에 빠진 모양이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이런 고착은 보기 좋게 깨져버렸다.







- 띠띠리리리 띠띠, 띠띠리리리 띠띠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젊은 놈 핸드폰 벨소리가 ‘잘했군, 잘했어’라니.







- 띠띠리리리 띠띠, 띠띠리리리 띠띠







핸드폰 액정에는 필중의 사진대신, ‘발신자 표시 없음’ 이라는 글자만 크게 나타나 있었다.



선뜻 통화버튼을 누르기가 꺼려졌지만,



혹시라도 가족이라면 나에겐 이 상황에 대해서 설명할 의무가 있다.



물론 얼마나 믿어줄지,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딸칵







통화버튼을 누르고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 김필중씨 핸드폰입니다.”







- 치이이-







말은 없고 거슬리는 바람소리만이 들려왔다.



적어도 실내는 아닌 모양이다.







“말씀하세요. 김필중씨 핸드폰입니다.”







- 치이이이ㅡ





- 치이이이ㅡ







“말씀 없으시면 끊겠...”







- 치이이- 누구?







막 핸드폰을 끊으려는 찰나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소리에 묻혀서 또렷하진 않았지만 어딘지 낯이 익은 목소리였다.







“예. 말씀하세요. 김필중씨 직장 동료입니다.”







- 치이이이- 동료? 아, 하, 하하하.







갑자기 웃기 시작한다. 난 영문을 몰라 마냥 그 웃음소리를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 치이이이- 하하하. 대리님 오랜만입니다.







그 순간, 목소리의 주인공이 명확하게 떠올랐다.



수화상태는 좋지 않지만, 절대 잊지 못할 그놈의 목소리만큼은 똑똑히 귀에 박혔다.







“너, 너 이 씨발 오 주임이지?”







- 치이이이- 큭큭. 다짜고짜 욕을하세요. 그나저나 필중이 핸드폰을 왜 대리님이 가지고 있습니까?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삭혔다.



이 인내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모르겠다.







“너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 치이이이- 무슨 짓?







“몰라서 물어!? 이 씨팔...”







- 치이이이- 필중이는요?







“필중이 죽었다. 너 때문에 죽었다!”







- 치이이이- 이거 왜 이러시나. 따지고보면 저도 대리님 때문에 이렇게 된 거 아닌가요?







“뭐, 뭐? 이 개새끼가.”







- 치이이이- 크큭, 뭐 괜찮아요. 저는 나쁘지 않으니까.







“너, 너, 너 어디야!”







- 치이이이- 필중이 불쌍해서 어쩌나.







“어디냐고 이새끼야!”







- 치이이이- 그건 보셨어요, 제 책상에서?







“어디야!”







- 치이이이- 대리님을 저주하겠다고 쓴 글 말이에요.







“봤어. 봤다고. 그러니까 딴 말 하지마. 나하고 얼굴 보면서 얘기하자고. 당장!”







- 치이이이- 큭큭큭. 큰 소리 치기는. 자기 처지도 모르면서.



“뭐라고?”



- 치이이이- 행운을 빕니다.



“뭐? 야. 오 주...여보세요? 여보세요? 이 씨발. 여보세요!”



전화가 끊어졌다.



그리고 한동안 나는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오 주임은 예전의 오 주임이 아니었다.



비꼬는 말투야 예전에도 비슷했지만, 말 하는 내내 흘리는 그 기분 나쁜 조소가 거슬렸다.



오 주임은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걸까.



그리고 왜 내게 행운을 빈다는 말을 한 걸까.



어쨌든 오 주임 덕분에 정신은 번쩍 들었다.



이렇게 슬퍼하고 있을 새가 없다.



필중에 이어 아내와 딸까지 잃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굳은 마음을 먹으니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수월했다.



막상 걸음을 떼려하자 아까보다 훨씬 짙어진 안개가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손전등에 의지하면 그럭저럭 갈 수는 있을 것 같다.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건물 안에는 여전히 그 괴물들이 돌아다니고 있겠지.



핸드폰 슬라이드를 열었다.



또 다시 필중의 웃는 모습이 나를 괴롭혔지만, 다행히 이번엔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







......







- 여...보세요.







“나야.”







-자, 자기야?







“응. 몸은 좀 어떤 것 같...?”







- 꺼, 껌. 껌! 껌 좀!







“은영아...”







- 제, 제발. 껌 좀 줘. 나, 나 미칠 것 같아. 나, 나.







“곧 갈 거니까. 조금만, 조금만 참아.”







- 모, 못참겠어. 나, 나, 꺼, 껌. 껌 좀. 제발. 제발.







“은비는 아무 이상 없지?”







- 제발, 제발...







“진정해!”







- 제, 제발, 제...







- 딸칵.







......







......







- 아. 아. 한 번 더 알립니다. 후평동 일대에 심한 안개가 껴 있으니 통행에 각별한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이상 동사무소였습니다.







......







......







비탈길로 들어섰다.



손전등에 의지해서 길을 찾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거기에 산길인데다, 이곳엔 단 한 번만 왔을 뿐이었다.







- 바스락, 바스락.







그나마 낙엽소리가 아니면 산길이라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



잔가지나 돌 같은 장애물들을 효과적으로 피하기도 힘들어, 걸음 속도가 무척이나 느렸다.



그러니까 이 빌어먹을 안개 때문에 말이다.



기억하기론 비탈길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갈래 길이 나온다.



그곳에서 외진 곳과, 등산로로 나뉘었는데 그 가게는 분명 외진 곳에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시야가 막혀서야 구분이나 가능할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근처에 있던 바위에 걸쳐 앉았다.



그리고 시계라도 볼 양으로 핸드폰 슬라이드를 열었다.





아홉 시 십오 분.



안개 낀 산길을 오밤중에 거니는 내 신세가 왠지 한스럽다.



물끄러미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다가 메뉴를 눌러 보았다.



여러 가지 메뉴가 나오고 그중 내 눈에 띈 것은 ‘메시지 보관함’이었다.







[오늘도 야근이야?





11/05 20:30 러브]







[미안해 일 하는줄

몰랐어





11/05 20:10 러브]







[전화 왜 끊어?





11/05 20:06 러브]







여자 친구로 추정되는 사람과 문자를 주고받은 모양이다.







[전화 좀 받아





11/05 19:50 러브]







[내가 잘못 했어



그런데 너가 오해



한거라고





11/05 19:30 러브]







[남자가 자꾸 소심하



게 그럴래?





11/05 19:28 러브]







밑으로 몇 개의 문자를 더 읽어보니 여자 친구가 확실한 것 같았다.



내용으로 보아 한창 사랑싸움 중이었던 것 같다.



문득 연애시절에 아내와 다퉜던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 모두가 인정하는 닭살 커플이었지만, 가끔씩 심하게 다툴 때도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내 까탈스러운 입 맛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는데,



결혼 후에도 가끔씩 마찰이 일어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관음증이 발동한 변태 성욕자마냥 나머지 문자들도 빠르게 훑어나갔다.







[아직도 화났어?





11/05 18:00 러브]







[안 끝났어?





11/05 18:50 러브]







[니 여자친구도 생각



해야지? 명심해





11/05 18:40 개새끼]







아는 사람이 여자친구뿐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문득 이질적인 문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니 여자친구도 생각



해야지? 명심해





11/05 18:40 개새끼]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SK뷰 아파트 201동



1003호 맞지?





11/05 18:37 개새끼]







[말 들어 살려준 은



혜도 모르고 여자친



구 예쁘더라?





11/05 18:34 개새끼]







[안하겠다고?





11/05 18:34 개새끼]







[김 대리한테 그걸 삼



키게 해 방법은 너가



알아서 생각하고





11/05 18:32 개새끼]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정황상, 직감상, 이건 틀림없는 오 주임이었다.



필중에게 뭔가를 요구했지만, 그것을 거절하자 여자 친구를 들먹이며 협박을 한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이렇게 최악으로 변할 수가 있는 거지?







[그건 알 거 없어 너



만 괜찮으면 됐잖아





11/05 18:30 개새끼]







........







[쓸쓸해?ㅋㅋ





11/05 15:20 개새끼]







뭔가 중요한 내용이겠지만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필중의 보낸 메시지를 볼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저장 해 두지 않은 것 같다.



중간에 ‘김 대리’라는 말이 나온 걸로 봐서는 나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대체 필중은 오 주임에게 무슨 일을 당한 걸까.







.......







.......







아까보다 부쩍 심하게 추위가 느껴진다.



안개가 조금은 거치길 바랐는데 오히려 더 심해진 느낌이다.



그러나 더 이상 지체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어차피 길은 두 개 뿐이다.



그러니까 확률은 반반.





자리에서 일어나 앞을 향해 손전등을 비췄다.



잠시 머뭇하는 것도 잠시, 친숙한 오른쪽 길로 몸을 틀었다.











8.



내가 생각할 때 이 길은 다행히도 외진길이 분명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부쩍 늘어난 돌맹이들과 잔가지, 그리고 관리 안 된 나뭇가지까지 가세해 나의 걸음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등산로라면 하다 못 해 나뭇가지 정도는 쳐 놨을 텐데 말이다.



확신이 깊어질수록 한 걸음 떼기가 무서울 정도로 길이 험해진다.



이대로 가다가 굵은 가지에 눈이라도 찔리면 큰일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대한 손전등을 넓게 비추고 왼손으로 앞을 더듬어가며 걷는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이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맛 집이고 뭐고 다시는 후평동 쪽에는 얼씬도 안 할 거라는 생각이었고,



둘은, 거래처 사장에게 들었던 그 괴상한 이야기였다.







......







......







“그건, 마을에 갑자기 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네.”







“괴상한... 일이요?”







“그래. 말 그대로 괴상한 일. 그 집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벌어진 일이었네. 길게 말 하진 않겠네.



그렇다고 길게 아는 것도 아니지만 허허.”







“예, 괜찮아요. 말씀해 보세요.”







“우선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 중 대부분이 죽었어. 한 사람만 살아남았으니 대부분이란 말도 약간 어폐가 있네만 어쨌든.



그런데 그 죽은 사람들이 그렇게 처참하게 죽었다고 해. 뭐 신체가 훼손되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하며 죽었다고 하더라고.



뭐랄까. 뭐에 중독이라도 된 사람처럼 스스로 온 몸을 쥐어뜯어가며 괴로워했다고 해. 그것도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부 똑같이 말이야.”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한 사람만 그렇지 않은 건가요?”







“맞아. 그 사람은 멀쩡했지. 아니 어떻게 보면 멀쩡한 것도 아니었어.”







“예? 무슨 말씀이신지?”







“몸은 멀쩡했지만 성격이 아예 딴판이 되었다는군. 그러니까 몹시 과격하게 변해서 심지어는 지 부모까지 때렸다고 해.



사람들 사이에서 급속하게 안 좋은 소문이 퍼졌지. 나중엔 정말 죽어야 할 놈은 살아있고, 착하디착한 사람들만 죽어났다라는 등의 말까지 나돌았지.



하여튼 이 모든 게 그곳을 다녀온 이후로 벌어진 일이니 얼마나 괴상한 일이야. 안 그래?”







“정말 그곳에 뭔가가 있군요. 이거 저도 살짝 두려운데요?”







“자네는 왜?”







“저도 거길 다녀왔으니까요. 매점 주인보다 그 음식점 주인, 사장님 말씀대로라면 딸이 되겠죠? 그 사람이 더 이상했어요.



뭐 매점 주인도 이상했어요. 저한테 괴상한 껌이나 주고...”







“껌? 그 사람이 껌을 줬어!?”







“예? 아, 예. 뭐. 맞아요. 처음에는 주기 싫어하는 것 같더니 나중에는 주더라고요. 기가 막히게 달다면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아. 문제라고 할 것까지는 없는데. 내가 말한 그 사람들 말이야. 돌아왔을 때 하나같이 껌을 씹고 있었다고 들었거든.



뭐 그때도 여전히 껌 장사를 한 모양이지 허허.”







......







......







402호에 두고 온 족발과 보쌈은 잘 있을까.



혹시 괴물들이 그런 것도 먹는 것은 아니겠지.



손전등만 챙기지 말고 그것들도 챙길걸.



일부러 비싼 집에서 샀는데 아까워 죽겠네 정말.





대체로 이런 생각들이 가득한 걸로 보아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기 시작한 모양이다.



저녁은 먹었지만 운동 아닌 운동을 워낙 많이 한 탓에 금방 배가 꺼진 것 같다.



그나저나 살짝 긁힌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픔이 오래간다.



방금 전에 미처 피하지 못 하고 나뭇가지에 베인 내 오른쪽 어깨 죽지가 말이다.



어깨가 욱신거릴수록 이 맛없는 오 부장 껌을 씹는 내 턱의 속도도 빨라진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상대적으로 덜 외진 길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든 후부터 급속도로 걷기가 편해지고 있었다.



뭔가 관리를 받는 영역으로 진입한 모양이다.



조금 지나니 먼발치로부터 안개를 뚫고 보이는 갈색 건물의 외형이 손전등에 잡히기 시작했다.



그 가게가 분명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내 어깨 죽지를 노릴 나뭇가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테니 속도를 높여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안개는 대체 언제까지 껴 있는 거람.





걸음은 편해졌지만 마음은 급속도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고, 식은땀까지 흐르는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뭔가를 얻어내지 못 한다면 아내와 은비는 꼼짝없이 죽거나 괴물이 되고 만다.



그리고 당장 만나서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도 걱정이다.



'이 망녕 난 늙은이야' 라고 소리칠지,



'저 기억하시죠?' 라고 점잖게 물어볼지,



다짜고짜 '씨발' 하면서 후려갈길지 말이다.



물론 '저 기억하시죠?' 쪽으로 굳힌 건 두말 할 필요 없었지만.







-끼이이익







“콜록 콜록.”







자욱한 먼지가 내 기관지를 괴롭힌다.



내부는 불을 꺼놔서 몹시 어두웠다.



아니 몹시 어두운 정도를 떠나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 흡사 아까 전에 건물에서 느꼈던 어두움과 비슷했다.



정말 치가 떨릴 정도로 나를 두렵게 만들었던 그 어둠 말이다.







“콜록, 저기요.”




문을 닫고 손전등을 앞으로 비췄다.



안개가 없어서 그런지 손전등을 비추는 곳 마다 불편 없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해도 결코 인상적인 내부는 아니었다.



일단 며칠 전과 다를 바가 없었고,



유통기한이 수십 년은 지났을 것 같은 고대 과자들만 잔뜩 쌓여있을 뿐이었으니까.







“안 계세요? 저기요?”







여기저기를 비춰보아도 주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좁고 길쭉한 내부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오래된 쪽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끔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가게와 집을 같이 붙여 쓰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다.





오늘 밤은 실례가 되는 짓을 조금 해야겠다.



그러니까 허락의 유무를 떠나서 이 문을 벌컥 열겠다는 말이다.



일단 물어는 봐야겠지 들어가도 되겠냐고.







“저기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대답은 없었다.



나는 억지로라도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무로 된 미닫이문의 손잡이를 붙잡아 강하게 옆으로 재꼈다.







-벌컥!







낡은 문이라 뻑뻑할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쉽게 열렸다.



불이 꺼진 방 안에는 몹시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뭔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팔을 들어 코와 입을 막고 손전등을 앞으로 내밀었다.







“허억?”







그리고 나도 모르게 뱉어내는 신음소리.



처참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하, 할아버지! 이봐요! 정신 차려봐요!”







신발을 벗는 것도 잊은 채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주인의 끔찍한 모습을 본 순간 그런 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가까이서 보는 주인의 모습은 더욱 참혹했다.



밀가루 반죽을 수제비로 만들기 위해 제멋대로 떼 낸 것처럼,



주인은 온 몸의 살점이 뜯겨져 나간 채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딱 널 부러졌다는 표현이 옳을 수밖에 없는 게,



점잖게 눕거나 엎드린 자세가 아닌, 마치 나치의 기호처럼 팔과 다리를 보기 흉하게 펼쳐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건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에 이 사람이 죽었다면, 이 사람이 죽었다면 모든 것이 끝난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채 돌아가야 하고, 눈앞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어야 한다.



막말로 살점이 뜯기든, 심장을 파 먹히든 그건 내 알바가 아니다.



숨만 붙어있다면,



그러니까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할 지 말만 해줄 만큼의 생명력만 가지고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씨, 씨발! 눈 떠, 눈 뜨라고!”







손전등을 얼굴 바로 앞까지 비추며 소리쳤지만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씨발!”







-퍼억!







다짜고짜 씨발이라고 외치며 후려갈겼다.



사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저 기억하시죠? 였는데.







-퍼억! 퍼억!







몇 번 더 후려갈겼다.



차마 노인의 얼굴은 때릴 수 없어 몸통과 팔을 타겟으로 삼았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퍼억! 퍼억! 퍼억!







“씨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얼굴을 때릴 찰나,







“으으음.”







주인의 입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주먹의 움직임을 멈추고 주인을 향해 다시 손전등을 비추었다.



주인이 간신히 눈을 뜨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조금씩 그가 빛을 인식하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으으으. 누, 누기래요?”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우선 나는 손전등으로 내 얼굴을 비추며 노인에게 말했다.







“나에요. 기억하시죠?”







그 상태로 충분히 시간을 준 후 다시 주인을 비추었다.



주인이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르겠어요? 그때 껌 삼키지 말라고 저한테 그러셨잖아요.”







“어? 아아. 자네로기만.”







기억이 난 모양이다.



주인의 표정이 풀리고 있었다.







“자넨 삼키지 않았니?”







“삼키지 않았어요. 저는 원래 껌 삼키는 것을 싫어해요.”







“오호. 대단한데. 이 껌을 삼키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뭐에요? 그럼 삼킬 걸 예상하고 줬다는 거야!?”







내가 소리를 지르자 주인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 그리 소리를 질러? 껌 삼키면 어떻게 되는지 봤니?”







“봤죠. 아주 잘 봤죠. 잘도 그런 껌을 우리한테 줬습니까!”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있었다.



어쩌다가 다 죽어가는 노인을 윽박질러야 하는 상황까지 되었을까.







“진정해 진정. 나는 분명히 경고했디. 그리고 니들이 먼저 달라고 했디. 안 그래?”







말을 마친 주인이 살짝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계속 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아까 전에 왔던 놈과는 반응이 영 다르네. 에헹.”







“아까... 전?”







“니랑 같이 왔던 놈 있잖아. 삐쩍 마른 놈 말이야.”







삐쩍 마른 건 둘째치고 나랑 같이 이곳을 왔다는 것만으로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건 오 주임이었다.







“오 주임? 오 주임이 여길 왔었어요?”







“그래. 왔었디. 그놈이 내 몸뚱아리를 어떻게 해 놨는지 봐.”







주인이 뜯겨져나간 자신의 몸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 그게 오 주임이 그랬다는 거예요?”







“크, 크, 크큭. 맞아. 그렇지만 내가 원했던 일이야.”







“원하다니. 무슨 말이에요 대체!”







“나는 이제 늙고 힘이 빠졌으니 숙주가 될 수 없디. 젊고 싱싱한 새로운 숙주가 나타났으면 당연히 물러나야 하는 거야.”







주인이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수, 숙주라니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요!”







“그 놈에게 내 딸도 줬디. 내 딸은 숙주를 돕는 데는 최고디. 더불어 예쁘기도 하고. 끌끌.”







“딸? 옆에 음식점 주인 말이에요?”







주인이 약간 놀랐다는 눈초리를 보였다.







“오잉? 그걸 어떻게 알았디? 그래. 걔가 내 딸이디. 늦게나마 짝을 만나서 출가했으니 난 이제 염원이 없



다. 끌끌끌.”







정리해보면,



오 주임은 숙주인지 뭔지가 돼서 주인의 몸을 이 지경으로 만들고,



사십대는 훌쩍 넘긴 것 같은 그 아줌마를, 그러니까 주인의 딸을 데리고 이곳을 나가 버렸다는 건가?



대체 어떻게 이해하면 잘 이해했다고 소문이 날 수 있을까?







“오 주임이 원한건가요? 그렇게?”







“글치! 그건 숙주의 사명인걸. 내 딸은 숙주 옆에 있어야 하니께. 그건 니가 될 수도 있었고. 끌끌.”







“내가 될 수도 있었다?”







“고럼. 둘 모두가 그렇게 됐다면 한 놈은 나한테 죽었을 거야. 다행힌거디. 끌끌”







이 미치광이 노인내가 대체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건가.



온 몸이 뜯어져나가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은 상태로, 정신 나간 소리를 잘도 내뱉고 있었다.



그 음식점 주인을 데리고 산다는 생각만으로도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이보세요! 일단 다른 건 다 집어치우고. 껌을 삼킨 사람을 되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요. 저는 그것만 들으면 돼요.”







주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사람처럼 갑자기 눈동자를 뒤집었다가 정상으로 돌렸다가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온 몸에 살이 뜯겨져 너덜너덜한 노인네가 눈을 뒤집고 있는 모습은 실로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이봐요! 어서 말해요. 시간이 없다고!”







순간 노인의 눈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껌에 대해서 어디까지 아니?”







“아, 진짜 딴 말 하지...”







“삼키면 어떻게 되는지 까지만 아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인이 완고한 어조로 내 말을 끊어버렸다.



아무래도 질문에 답을 해주지 않으면 원하는 대답을 얻기 힘들 것 같았다.







“후우. 알만큼 알아요. 삼키면 괴물로 변하는 것. 껌을 씹다가 뱉으면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는다는 것.



그리고 한 번 씹으면 미친 듯이 삼키고 싶은 것!”







“끌끌끌 끄윽, 끌끌끌큭큭.”







내 말이 끝나자 노인이 웃기 시작했다.







“많이 아네.”







“그러니까 어서 말해요. 어떻게 하면 되돌릴 수 있는지!”







“그런데 껌을 삼키면 무조건 괴물로 변하는 건 아니디. 때로는 그 자리에서 눅눅하게 변하기도 허고, 때로는 뻥 하고 터지기도 허디.



그건 어떤 법칙이 있는 건 아니야. 중요한 건 삼킨 사람이 껌으로 변한다는 거디.”







오 부장은 폭발하고, 양 주임과 이 주임이 괴물이 된 데에는 딱히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말인가?



주인이 계속해서 말했다.







“껌을 씹다가 뱉으면 죽디. 살기 위해선 계속 씹거나, 삼키거나 둘 중 하나 뿐이야.”







“껌으로 변하는 게 죽는 것과 뭐가 다르죠!?”







“끌끌끌. 껌으로 변하지 않는 방법을 알고 싶니?”







나는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드디어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할 모양이었다.




“어, 어서 말해요. 지금 이 시간에도 내 아내는, 내 딸은 변하고 있을 거라고요. 그 빌어먹을 껌인지 뭔지!”







“끌끌끌끌. 가족이 껌을 삼켰나? 경솔했군. 끌끌.”







뭐가 그렇게 웃긴지 계속 끌끌 거린다.



무척이나 거슬렸지만 지금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원하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진 말이다.







“그 전에. 숙주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야겄는디 괜찮겠어?”







“제기랄! 괜찮지 않아요. 더 이상은 참지 않을 거예요!”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숙주고 나발이고 나에게는 전혀 쓸모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아내와 딸만 구할 수 있으면 된다.



어찌됐건 나머지는 그 후에 생각할 일일 뿐이다.







“어허 성깔머리하고는. 좋아 그것부터 말해주겠어.”







“어서 말해요!”







“끌끌. 숙주의 살을 씹으면 돼. 그러면 껌으로 변하지 않디.”







“씹다가 뱉으면요?”







“그럼 다시 돌아가게 되는거디. 껌을 삼킨 시점으로. 끌끌끌.”







문득 필중의 말이 떠올랐다.



오 주임의 껌이라서 뱉을 수 없었다는 그 말.



그렇다면 필중도 껌을 삼켰던 것인가.







“그럼 일시적인 거잖아요. 좀 더 제대로 된 방법을 알려줘요!”







“끌끌. 그럴려면 내 딸에 대한 이야기와, 숙주의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어. 듣겠니 안 듣겠니?”







왈가왈부 하며 시간을 허비할 바엔 차라리 듣는 쪽이 나을 것 같다.



결국 교활한 늙은이의 페이스에 따라가게 되는 모양이다.







“후우... 알았어요. 어서 말해요.”







나는 말이 길어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







......







......







“택시!”







가게에서 나오니 다행히도 안개가 조금 걷혀있었다.



차량들도 제법 통행이 가능할 정도여서 어렵지 않게 택시 한 대를 잡을 수 있었다.







“서울이요.”







“네?”







택시기사가 나의 말에 짐짓 놀란 표정으로 반응을 한다.



하지만 이내 얼굴 전체에 환한 미소를 띠기 시작한다.



곧 있으면 할증도 붙을 테니 그야말로 봉 잡은 기분일게 뻔했다.



어차피 나도 수 십 만원 깨질 건 각오하고 있었다.



사실 수 십이든, 수 백이든 돈 따위는 지금 나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손님. 서울까지는 요금이 상당히 나올 텐데 괜찮으세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슬쩍 나를 떠볼 모양인가보다.







“제가 정말 급합니다. 돈은 따블로 드릴 테니 최대한 밟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기사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밝아졌다.



택시 기사 입장에선 정말 엄청난 횡재나 다름없을 테니 말이다.







“타, 타세요. 운전벨트 단단히 메셔야 할 겁니다.”







기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얼마나 걸릴까요?”







“음. 여기 빠져나가는 것만 조심하면 대략 두 시간 내외로 도착할 것 같은데요?”







두 시간 내외도 내게는 너무 길다.







“더 빨리는 안 될까요? 한 시간 반 정도로.”







“아, 그렇게는...”







“따따블로 드릴게요.”







“아, 뭐. 예. 오늘 정말 미친 듯이 밟아보죠!”







기사가 평소에도 이렇게 환하게 웃어준다면 손님들이 비싼 택시비를 내더라도 만족스러워 할 것이다.



따따블을 준다는 말에만 이러지 말고 말이다.







“자 그럼 출발합니다.”


기사는 엑셀에서 좀처럼 발을 떼지 않으며 능숙한 솜씨로 기어를 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계기판의 화살표가 숫자 100을 지나고 있었다.



그야말로 한 밤의 질주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한 쪽 손으로 안전벨트를 꼭 잡고,



나머지 손에 쥐고 있는, 가게 주인이 죽기 전에 남긴 손가락 두 마디만한 크기의 유리병을 보고 있었다.



반 정도 차 있는 분홍색 액체가 택시의 움직임이 격해지자 병 안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트에 머리를 기댄 후,



나를 무척이나 곤란하게 만들고 죽어버린 그 노인네와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그 생각 덕분에 먼 길을 지루하지 않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어느새 택시가 영동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난히 짙었던 안개도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자 이제 선택은 자네가 하는 거네. 세상을 구하고 영웅이 될 지, 당장 가족만 구하고 말 건지 말이야.”







......







......







-끼이이익.







택시가 급정거를 했다.



몸이 앞으로 크게 휘청했지만 다행히 쥐고 있던 유리병은 놓치지 않았다.







“야 이 개새끼야! 운전 좆같이 할래!?”







기사가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쳤다.







“씨발. 끼어들기를 할 거면 깜빡이라도 키던가.”







“시속 100킬로가 넘는데 끼어들기를 했다고요?”







기사가 고개를 원래대로 돌리고 다시 기어를 넣으며 말했다.







“요즘 정신 나간 놈들 많아요. 간 떨어질 뻔 했네 진짜.”







나는 앞을 바라보았다.



점점 멀어지고 있었지만 그 끼어들기를 했다는 차량의 뒷 꽁무니가 확실히 보였다.







“5..7..7..8 이네요.”







“예?”







“차량번호 말이에요. 기억해 두면 좋을 것 같아서.”







그러자 기사가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꼼꼼하시네요. 자 그럼 다시 달려봅시다.”







말을 마친 기사가 다시 엑셀을 힘차게 밟기 시작했다.







......







......







“먼저 숙주에 대해서 말을 허디. 나는 여기로 도망 오면서 내 전 숙주를 만나게 됐어. 그리고 나도 그 껌을 삼켰다.



온 몸이 근지럽고, 열이 나는디. 미칠 것 같더라고. 그때 그 사람이 말 했디, 숙주의 거래를 하지 않겠냐고. 숙주의 거래를 하면 살 수 있을 거라고.



난 무조건 그러겠다고 했디. 끌끌. 그런데 대가로 내 딸을 요구하더라고.”







......







......







“저 죄송한데요.”







기사가 한 손으로 눈을 비비며 말했다.







“혹시 뭐, 껌 같은 거 있나요?”







“예?"







순간 흠칫 놀라 되묻고 말았다.



껌이라면 아주 덩어리째 가지고 있지만 절대로 줄 수 없는 것이었다.







“없어요. 저는 껌 같은 거 별로 안 좋아합니다.”







기사가 내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에이. 지금 씹고 있는 건 뭐에요 그럼.”







아차.



껌을 씹고 있다는 것을 깜빡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비슷한 상황에 애를 먹은 적이 있던 것 같다.



아마 그때도 택시 안이었지.







“아아. 이건 껌이랑은 좀 다릅니다. 그냥 고무 같은 거예요. 제가 턱이 좀 약해서요.”







아무리 지어냈다고 하지만 이렇게 조악한 변명을 하다니.



민망한 나머지 껌을 씹는 움직임이 더욱 빨라진다.



역시나 기사는 영 시덥지않다는 눈빛을 흘리고 있었다.



이럴 때는 눈을 감아버리는 게 최고지.







......







......







“씨벌 내 딸을 다 늙어빠진 새끼한테 갖다 주려니 야마가 돌디 않겠어? 처음엔 거절했디. 차라리  듁겠다고.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건 정말 도저히 못 참겠더라고. 씨벌.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정말.



그래서 내 딸이 뭐냐고? 내 딸은 숙주의 씨를 만들디. 숙주가 되려면 내 딸의 살을 먹어야 한다.”







......







......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HBS 자정 뉴스입니다. 첫 소식입니다. 오늘 저녁 서울 강동구에서 택시기사



박모씨가 가족 모두를 죽이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현재 박씨의 종적은 묘연한 상태이고,



피해 가족은 아내와 아들 두 명, 그리고 생모까지 총 네 명인 걸로 밝혀졌습니다. 경찰 조사에 의하면 박씨는



아내 유모씨와 생모를 살해한 후 마지막으로 자식들을 죽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아들 두 명에 대해서는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토막을 내어 집안에 방치한 것으로 알려져, 수법의 잔혹성을 짐작케 하는 상황입니다.



경찰은 현재 긴급 수배령을 내리고 전국의 고속도로 및 톨게이트에서 집중 검문을 실시하고 있으니, 청취자 여러분들도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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